12월 23일(목)

서울 아파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가까운 구산 성지를 찾았다.

뒷산이 거북 형상을 닮았다하여 거북 구(龜)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구산' 이라고 하였다. 

기해박해 때 순교한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고향이고 묘소가 있는 곳으로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을 간직하고 있는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성지이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구산 성지 입구. 성지 안의 모습이 쉽게 보이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 준다.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마리아 상'

구산 성당의 초대신부이며 성모님께 특별한 신심을 가졌던 고 길홍균(이냐시오)신부님이 꿈속에서 알현한 성모님의 모습을 당시 서울대 미대학장이신 김세중(프란치스꼬) 조각가에게 작품을 의뢰하였고, 김세중 조각가는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심혈을 기울여 이 성모상을 제작하였다.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 지시봉을 들고 계시는 특별한 모습의 성모님은 가정과 인류의 평화를 전구하는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마리아'로서 구산 성지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성모상이다.

 

아홉 분의 순교자를 기리는 안내문

맨 앞의 김성우(안토니오) 성인 안내문

성인께서는 유방제 신부를 모시고 전교회장으로 구산의 온 마을을 열심한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1840년 1월 가족과 함께 붙잡혀 '사학의 괴수'로 지목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몰매질과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극복해 냈다. '나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다.(死生間 天主敎人)'라는 굳은 믿음으로 1841년 4월 29일에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치명하시어 순교의 화관을 쓰셨으니 그때  성인의 나이 47세였다.

 

성인 묘역으로 들어가는 안당문 앞에서 예수님께서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주신다.

 

 

성인 묘역에는 천주교 성인으로 시성된 김우집 (성우 안토니오)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만집과 문집, 성인의 아들 성희, 만집의 아들 차희, 문집의 아들 경희, 6촌인 윤희, 최지현, 심칠여 아홉 분의 순교자가 모셔져 있다.

 

묘소 옆의 구산 성지 본당

 

1839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모방 신부에 의해 구산공소가 설정되었다. 

 

구산 성지 성역화를 위한 기와 봉헌 안내

 

구산 성지를 순례하면 신앙 선조들의 순교사, 박해사, 생활사 등의 순교 영성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신앙 선조 영성 마을'을 건립하여 신앙 선조들의 전통적인 신앙 생활을 체득, 체화할 수 있게 꾸며 나갈 예정이란다. 

 

십자가의 길

 

이곳 구산 성지는 기와를 이용하여 성지를 꾸민 곳이 많다.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은 1836년에 입국한 모방신부를 집에 모시고 우리말과 조선의 풍습을 가르쳤으며, 박해의 칼날 아래 풍전등화 같은 교회 공동체를 보존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수차례 집을 옮겨 다니며 전교 회장직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성모 동산

 

순례자들을 위한 소나무 숲 쉼터

 

야외 제대

 

묵주 기도의 길

 

망치과 곡자를 들고 있는 성 요셉상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남편의 모습을 형상화 하지 않았을까?

 

명일동 성당을 다닐 때 와 보았던 구산 성지.

많은 이의 노력으로 도심지 내의 아름다운 성지가 조성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도심지에 이런 아름다운 성지가 있다는 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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