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9일(금)
오늘은 종일 비 예보가 있다. H여행사의 군위 사유원 패키지 상품을 2주전에 예약을 했기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2021년 개장한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의 사유원(思惟園)으로 향했다.
사유원 HP에는 사유원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글쎄, 좀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풍류의 산수 사유원, 팔공산 지맥 70만㎡에 사람이 만든 자연의 정수가 펼쳐 있습니다. TC태창을 이끌었던 사야 유재성이 평생 아꼈던 바위, 세월을 견딘 소사나무, 소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 조경가, 예술가들의 원초적 공간이 함께 자리잡았습니다.
사유원은 수목원이며 산지 정원이자 사색의 공간입니다. 계곡과 능선을 따라 무념산책을 합니다. 절기의 바람을 품은 산세, 거친 콘크리트와 붉은 철판의 그림자, 때로 들려오는 풍류의 소리가 부릅니다. 사유원의 아름다움이 본래의 우리를 부릅니다.
11:00 좀 지나 도착한 사유원의 몽몽마방 식당에서 더덕비빔밥으로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후 사유원의 정문 치허문을 통해 산길로 접어든다. 관람료가 평일에는 50,000원, 주말과 공휴일에는 69,000원이다.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야자매트가 깔린 비나리길은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점점 가빠진다.
비나리길에서 초하루길로 빠져나와 소요헌으로 향한다.
소요헌은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스페인 마드리드 오에스테 공원에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려고 계획했던 프로젝트를 사유원에 만들었단다.
피카소의 작품 대신 시자의 조각들이 설치된 소요헌, 한국 전쟁의 격전지였던 이 곳은 생명과 죽음의 순환이 새겨진 공간이란다. 숲속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이 주는 이미지가 강하게 와 닿는다. 비오는 날 바닥에 고인 물에 무채색의 건물이 반영되어 신비로움을 더하는 것 같다.
가이드가 보내준 운무속의 소요헌의 모습
알바로 시자의 요청으로 소요헌과 함께 구상한 전망대인 소대. 기울어진 20.5m의 탑을 오르면서 사유원의 전망을 사방으로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좋았다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을텐데, 이쉬움이 남는다.
우중에 우산을 받쳐들고 산길을 걷는 것도 나름대로 꽤나 운치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리는 비가 무감각해진다. 물가에 핀 창포꽃이 이곳을 찾은 나그네에게 옅은 미소를 던진다.
소백세심대 입구의 돌부처가 오가는 중생들을 위해 합장을 하고 안녕을 기원한다.
콘크리트 벽 사이를 지나니 모과나무 고목들이 펼쳐져 있는 풍설기천년이 나타난다.
연못과 어우러진
바람과 서리, 인간의 욕망을 견뎌낸 반 천년 모과나무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풍설기천년은 사유원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란다. 한 때 나무 둥치로 밀반출되려던 이들을 사유원의 설립자가 지켜내고 정성으로 다시 키웠다고 한다.
팔공산의 정기를 받아 천년을 맞이할 108그루의 모과나무가 만들어 내는 풍광에 절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노란 열매가 달린 모과나무의 가을 모습과 하얀 눈이 덮힌 겨울모습이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가이드가 보내준 사진)
설립자가 수집한 200년 넘은 배롱나무들을 조경가 카와기시 마츠노부가 정성스럽게 옮겨 심었다는 별유동천.
짙고 맑은 붉은 꽃들이 긴 여름 흐드러지면 인간 세상이 사라진 별유천지 무릉도원과 같다는 의미란다.
별유동천 석등 안에 계시는 부처님은 혼탁한 이 세상이 무릉도원이 되기를 사유하고 계시지 않을까?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여름철 모습 (가이드가 보내준 사진)
숲속에 외로이 서있는 집? 출입문 옆에 다불유시(多不有時)란 명패가 붙어있다. 숲 속의 아름다운 다불유시(WC)?
풍설기천년 위에 자리잡은 팔공청향대는 모과나무 계곡을 내려다 보고, 별유동천을 바라보며 멀리 팔공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다.
대좌에 걸터앉아 오른손을 뺨에 대고 생각에 잠겨 있는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였을 때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뇌하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비오는 오늘 보살님은 흔들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지 않으실까?
정향대에 앉아 시조 한 수 읊고 있으면 신선이 될 듯 하다. 비가 와 앉아보지도 못해 아쉬웠다.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 명정. 산정상의 멋진 전망대를 생각한 설립자와 달리 명정은 땅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명정은 현생과 내생이 교차하는 곳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잊고 오로지 하늘만 보이는 마당, 물이 흐르는 망각의 바다와 붉은 피안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고, 작은 성소와 삶의 좁은 통로로 둘러 쌓여 있다." 는 설명을 이해하려면 이곳에서 긴 시간의 사유가 필요할 것 같다. (아래 전경 사진은 가이드가 보내준 것)
능허대
사유원 가장 높은 공간에 자리한 가가빈빈에서 모과차를 즐기며 쉼의 시간을 갖었다.
사유원 HP의 겨울철 내심낙원의 모습
내심낙원은 근대기 한국 가톨릭계의 거장이자 사유원 설립자의 장인 김익진과 영혼의 우정을 나누었던 찰스 메우스 신부를 함께 기리는 경당.
해방 무렵 물려받은 재산을 소작농에게 나눠주고 대구에서 청빈한 일생을 가톨릭에 바쳤던 김익진은 중국 종교학자 우징숑의 <내심낙원>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이 경당을 내심낙원이라 칭한 것 같다.
경당은 조용히 기도드리는 곳인데, 사람들이 들어와 쉼터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안타까웠다. 입구에 경당의 의미를 안내해 주면 좋으련만--------.
설립자의 소나무와 돌 컬렉션을 계곡에 모아 한국 정원을 만들고 유원이라 명명했다. 한옥 사야정과 팔공산 비로봉 간의 기운을 둘러싸고 주변 풍광을 적당히 열고 닫아 은은한 한옥의 멋을 살려냈다.
때마침 가야금 연주가 있어 잠시 솔 향기와 물 소리가 함께 하는 풍류의 공간을 만끽했다.
물의 정원 사담. 깊은 계곡의 풍치, 수생식물과 비단잉어의 연못, 춤과 음악이 펼쳐지는 데크와 레스토랑 몽몽미방.
연못에 반영된 신록의 우중 풍경이 은은하게 내 마음에 퍼져온다.
깨달음을 얻는 연못 오당의 낙차를 따라 붉은 철판이 물길 따라 누웠다는 와사. 신록이 우거져 와사의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HP에서 따온 겨울 사진을보니 와사란 말이 이해가 된다.)
와사를 돌아보고 다시 산을 올라 금오유현대에 다다른다. 이곳이 금오산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전망대라는데 날씨가 흐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유원에서 첫번째로 지어졌다는 현암은 오묘하고 아름다운 집으로 장대한 자연이 계절 따라 변하는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라는데, 관람객은 길과 연결된 옥상에서 전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우산을 받쳐들고 3시간 정도 사유원을 돌아본 후 비나리길로 내려온다.
산을 오를 때 보았던 매표소 옆 붉은 철판의 반가사유상(가이드가 보내준 사진)은 아직도 사유 중. 모든 인간의 번뇌를 책임지려는 듯 염화시중의 미소를 잃지 않은 온화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유원 앞 도로 치산효령로 건너편의 창평지에 1.8km의 탐방로가 있다는데, 시간 여유가 있다면 둘러보아도 좋을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먼 대구의 군위 사유원을 여행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운전 걱정없이 편하게 다녀왔다.
팔공산 지맥 70만㎡ 에 설립자의 의지로 유명 건축가, 조경가, 예술가가 함께 만들어낸 멋진 산지 공원이다. 2006년에 부지를 매입해서 이제까지 거대한 정원을 가꾸어 온 설립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건축물들이 주변 지형과 식물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느낌이다.
사유원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사유원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가을 단풍철과 눈 쌓인 겨울철에 와 보아도 좋을 듯 하다. 그러나 입장료가 다소 센 것이 부담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