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금)
인천 남동구 장수동의 이승훈 베드로 묘를 떠나 중구 항동의 제물진두 순교 성지로 향했다. 한중 문화관 옆 넓지 않은 부지에 자리한 제물진두 순교 기념 성당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주위를 한바퀴 돌고나서야 겨우 찾았다. 성지 앞 로터리에 차를 주차 하고 기념 성당을 둘러보았다.
1800년대 중후반 흥선대원군이 조정을 통치하던 시기에 조선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서양의 주목을 받았다.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인천 지역은 서양세력이 조선으로 드나드는 관문이자, 선교사들에게는 선교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15m 높이의 경당 외관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순교자들을 감싸 주시는 예수님의 손을 형상화 하였단다.
제물진두는 1868년 6월,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이모인 김씨와 남편 손넙적이 베드로, 사위 백치문 사도 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도끼로 참수당하여 순교한 곳이다.
1871년 이승훈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 형제, 이승훈의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와 손명현, 신자로 추정되는 백용석과 김아지도 이곳에서 함께 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또한 이곳은 성 김대건 신부가 부제품을 받고 입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본 후, 1845년 4월 사제품을 받기 위해 작은 목선(라파엘호)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자, 1888년 7월 22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4명의 수녀가 이곳 제물포항을 통해 순교자의 땅인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기도 하다.
순교자 10위의 명패가 적혀있는 좁고 긴 입구로 들어가면 성모님이 우리를 맞아준다.
경당 안에는 코로나로 입장 불가. 인터넷에서 사진 몇장을 캡쳐해 편지해 보았다.
인천교구는 2011년 이곳 제물진두의 부지를 매입하고 성역화를 추진하여 2014년 제물진두 기념 경당 축복 미사를 봉헌하였다.
월미도 부근의 제물진두 기념 경당!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인천 자유공원을 넘어 이곳을 오고갔었는데------
50여년이 지난 지금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긴 강산이 다섯번이나 변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