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토)
수요일에 서울에 와서 집안 일도 보고, 서울과 인천의 성지도 몇 군데 순례하고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인 것 같다. 오늘은 수원교구의 은이 골배 성지를 둘러보고 강릉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침에 여유를 누리다 보니 은이 성지에 오후 1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님이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첫번째로 사제성소의 열매를 맺은 곳이다.
'은이(隱里)'는 '숨겨진 동네', '숨어 있는 마을'을 의미하는데, 이곳에 박해를 피해 살던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로써 일찍이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후 은이는 지역 신앙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유서깊은 신앙의 역사를 이어어고 있다.
1845년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은이 공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곳에서 순교 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서품 후 사목활동의 직접적인 장소로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이 2001년 상해 정부의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철거하게 되자, 철거 직전 성당에 대한 실측을 실시하고 기둥과 대들보 등 일부 부재를 가져와 2016년 9월 이곳에 김가항성당을 복원하였다.
한옥 형태의 김대건 기념관
성당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김대건 신부 상
길 건너 언덕 위로 올라가니 야외제대 주위에 성모상과 십자가의 길이 있다.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는 소년 김대건을 형상화한 모습(?)
예수성심상이 은이 성지를 굽어보고 있다.
'청년 김대건 길'은 김대건 신부가 은이마을을 중심으로 박해를 피해 험한 산길을 다니며 교우들을 위해 사목적 열정을 불태우던 사목활동로이며, 1846년 26세의 나이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이민식 빈첸시오가 미리내에 안장하기까지 시신 이장로이다.
'청년 김대건 길'은 용인의 은이 성지, 골배 마실 성지, 손골 성지, 고초골 성지, 안성의 미리내 성지 다섯 성지를 둘러보는 10.3km의 길이다.
은이 성지 사무실에서 골배 마실 성지 순례 방법을 문의하면 안내도와 함께 자세한 설명을 해 준다.
네비에서 '양지 파인리조트'를 입력하고 리조트 안쪽으로 끝까지 들어가 양지 산장 앞에 차를 주차하고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조선 시대 '골배 마실'은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지네가 많아 '뱀 마을(배 마실)'이라고 불려왔다. 김대건(7세)의 조부 김택현과 가족들은1827년경 박해를 피해 충청도 솔뫼에서 용인으로 피신하여 교인들이 숨어 살던 신앙촌인 골배 마실에 정착했다. 골배 마실 성지 입구의 번호 자물쇠는 은이 성지에서 준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이 관헌에게 체포된 곳이며, 사제가 되어 오신 김대건 신부가 어머니와 첫 상봉한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미리내로 향하던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어머니 고 우르술라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린 곳이기도 하다.
성지로 넘어가는 다리 아래 얼음물에 나무들이 투영되고 있다.
이곳에 와서 미리내 성지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릉에 좀 늦게 도착하더라도 미리내 성지까지 순례를 하고 가기로 계획 변경.
서둘러 안성시에 있는 미리내 성지로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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