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제주 표착 기념 성당이 있는 용수 성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를 찾아갔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던 중 큰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였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은 용수리 해안에서 고국에서의 감격 어린 첫 미사를 봉헌하고, 배를 수리한 후 이곳을 떠나 금강 하류인 전라북도 나바위로 상륙하여 귀국하였다.
제주교구는 김대건 신부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9년 9월 19일 용수리 포구를 성지로 선포하고, 여기에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과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기념관 안의 성 김대건 신부 유해 공경실
기념관의 전시물들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라파엘호'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용수성지에서 14km 거리의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있는 대정성지를 찾아갔다.
아열대식물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묘소 입구에는 한복을 입으신 성모님이 모셔져 있고, 한쪽으로는 제주도 천주교 순례길 안내 표지가 있다.
순례길 4코스는 이곳 대정 성지에서 모슬포 성당까지의 약 7km 구간이다.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
신유박해가 때 남편 황사영이 순교한 후 부인 정난주는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귀양을 갔다.
정난주는 1801년 음력 11월 21일 두 살 난 아들 경한을 품에 안고 귀양길에 올랐으며, 추자도에 이르러 인적이 없는 해안가 갯바위에 아들을 내려놓고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녀는 깊은 믿음과 풍부한 교양으로 이웃들의 칭송을 받으며 37년을 살다가 사망했다. 비록 순교는 하지 않았으나 순교자의 생애와 다름없이 굳건한 신앙의 증거로 가득했기에, 후손들은 그를 순교자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
묘역에 설치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
남편을 잃고 자식을 객지에 버리고(?) 살아온 정난주 마리아의 가슴은 평생 괴로웠을 것이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평생의 한을 품고 살아가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대정 성지를 돌아본 후 모슬포로 이동
내일은 날씨가 풀려 계획대로 가파도 여행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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