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수)

모슬포에서 맞은 아침.  기대와는 달리 비바람이 우리의 여행 일정을 방해한다.

가파도 여행은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오전에 사려니숲을 둘러본 후 오후에 제주시내로 들어왔다.

시내 중심에 있는 관덕정 순교 터를 둘러보았다.

 

제주목 관아 입구의 모습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시설은 1434년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1435년에 골격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중.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제주시에서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를 원래의 양식으로 복구하고자,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마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문화층과 함께 문헌상에 나타난 중심 건물인 홍화각(弘化閣), 연희각(延曦閣), 우연당(友蓮堂), 귤림당(橘林堂)등의 건물터와 유구(遺構)가 확인되고 유물(遺物)도 출토되었다. 1993년 3월 30일에 제주목 관아지 일대가 국가사적 제380호로 지정되었고,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초단.기단석 등을 토대로 하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와 『탐라방영총람(耽羅防營總覽)』 등 당대(當代)의 문헌(文獻) 및 중앙문화재위원·향토사학가·전문가 등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관아지 복원 기본설계를 완료, 2002년 12월에 복원(復元)을 완료하였다. (한국관광공사 자료 인용)

 

앞마당에 형틀이 놓여있는 망경루

 

복원된 건물 사이사이에 옛 건물의 흔적인 주춧돌들이 보인다.

 

제주 목사가 집무하던 연희각

 

홍화각, 우연당, 귤림당 등 제주목 관아의 건물들

 

낭쉐 (나무로 만든 소)

과거 탐라국 시대부터 입춘을 맞아 탐라의 왕이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밭갈이 하는 의례를 통해 한 해의 풍년과 도민의 안녕을 기원했던 행사에서 유래한다.

 

우련당은 성 안에 우물이 없으면 적이 침입하여 성을 포위하거나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못을 파고 연꽃을 심은 뒤 그곳에 세웠던 정자이다.

 

제주 목사 관아를 나와 오른쪽에 있는 관덕정

관덕정은 조선 세종 때 군사들이 훈련하는 연무장에 세운 정자였는데,

1901년 제주 신축교안(신축민란)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 관덕정에서 민란군에게 처형당했다.

 

관덕정 순교 터 성지 순례 스탬프는 이곳에 있지 않고 이도동에 있는 제주 중앙성당에 있다.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을 돌아본 후 주차장 관리소에 가면 성지 순례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우천으로 우도와 가파도를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제주도내 성지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오후가 되니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풍랑주의보가 풀려 내일은 추자도로 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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