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토)
양근 성지에서 나와 13:30 경에 남양주시 조안면의 마재성지에 도착했다.
마재 성지는 거룩한 부르심의 땅이자 성가정 성지로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주역들의 생활 터전이자 가족 모두가 순교하고 시복 시성의 영예를 얻게 된 성지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 회장이자 최초로 한글 교리서를 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와 부인 유선임 체칠리아 성녀, 아들 정철상 가롤로 복자와 정하상 바오로 성인, 딸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 가족을 기념하여 봉헌된 성지이다.
마재의 성가정은 정약종으로부터 시작된 신앙이 두 차례의 박해 속에서도 이어져 내려오며 가족 전체가 목숨으로 신앙을 증언하였다. 정약종은 천주교의 창립 주역의 으뜸이 되었고 둘째 아들인 정하상은 천주교를 재건하는 으뜸 지도자로 위대한 성인이 되었다. 마재는 성가정 성지로 순례하는 모든 이의 가정도 성가정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는 순례지이다.
마재 성가정 성지는 의정부교구에서 2006년 순교 사적지인 마재 성지에 전담 사제를 임명하고 성역화에 나서
2007년 3월 새로 마련한 현 부지에 전통 한옥 양식의 성당과 명례방(만남의 방)을 건립하였다.
성가정 동산의 한복 입은 예수상 앞의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예수 성심께 바치는 봉헌 기도'
지극히 어지신 구세주 예수님, 주님 앞에 꿇어 주님의 성심께 저희 가정(공동체)을 봉헌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희 가정(공동체)을 보살펴 주소서. 저희는 온전히 성심께 의지하고 바라오니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다스리소서.
예수님, 저희가 하는 일에 강복하시어 기쁠때나 슬플때나 저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게 하소서.
온 세상 어디서나 모든 이가 입을 모아 예수 성심을 찬미하며 사랑과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아멘.
죄수의 목에 채웠던 목칼 모형과 십자가의 길
중간 문을 들어서면 순교현양탑과 한복을 입으신 성모상이 있다.
성가정 동산에 설치된 정약종의 성가정 모습
순교자들의 손에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빨마가지(소철 가지)가 들려있다.
순교 현양 동산에 들어서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아들 정철상 가롤로가 순례객을 맞이한다.
순교 현양비와 모자상
순교 현양 동산의 십자가의 길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한 예수님의 발 형상
10여 년의 세월의 흐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십자가의 가로대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다산 정약용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갖고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당쟁의 와중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스스로 천주교를 떠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고,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실학을 집대성했지만 스스로 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 하며 형 정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데 대해 부끄러움을 표시했다. 긴 유배 생활중 신심을 되찾은 정약용은 유배에서 돌아온 후 은둔과 묵상, 고행과 기도로 보속의 삶을 살다가 여항덕 파치피코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마재 성지 가까이에 다산 정약용의 유적이 많이 펼쳐져 있다.
마재의 성가정은 교회 역사에도 찾아보기 힘든 가정이다. 조선 시대 뼈대있는 집안에서 평안한 양반의 삶을 누릴 수도 있었을텐데,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이들이 천국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