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월)
수리산 성지에서 나와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남양 성모 성지에 도착하니 13:30경.
해가 나오면 기온도 올라가고 풍광도 좋으련만, 흐린 하늘이 몸과 마음을 움추리게 한다.
조선시대 남양은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다스렸다. 박해 당시 포교들이 잡아들인 천주교인들 중 양반 신분은 한양이나 공주로 이첩이 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지만, 신분이 낮은사람들은 남양부사의 재량에 맡겨졌다. 남양 부사는 모진 매질로 배교를 강요하다가 이에 응하지 않는 신자들을 바로 지금의 남양성모성지 자리에서 목매달아 죽였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는 남양의 순교자들로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정 필립보, 김홍서 토마 네 분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지만 더 많은 신자들이 남양에서 순교했을 것이다.
남양 성모 성지는 병인박해 때의 순교지로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가 시작됐고, 1991년 10월 7일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어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는 처음으로 성모 성지로 공식 선포된 곳이다.
또한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하며 모진 박해를 견디어 낸 순교자들의 성모 신심을 이어받은 신자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기도할 수 있도록 특별히 봉헌된 곳이기도 하다.
남양 성모 마리아상은 한국적인 느낌의 아름답고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상은 어린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꼭 붙들고 있는 독특한 모습인데, 이는 성모님을 꼭 붙들고 계신 예수님의 친밀한 모습을 통하여 성모님과 예수님 사이의 각별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이 드러나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예수 성심상 뒤로 2017년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통일 기원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건립하게 되었다는 남양 성지의 역사와 파티마 성모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성모자상
남양 성모 성지에는 성지 전체에 20단 묵주를 펼쳐 놓은 듯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지름 70cm 크기의 돌묵주 알들이 4.5m 간격으로 놓여 있어 순례자들은 그 묵주 알들을 한 알씩 짚어 가며 묵주 기도를 바칠 수 있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 조형물
1982년 남양 성지를 발굴하고 개발하신 박지환 요한 신부님 흉상
그 뒤를 이어 1989년에 이곳에 부임한 이상각 신부가 건축주 대표로 30년 넘게 남양 성모 성지를 가꾸어 가고 있다.
십자가의 길
성모 칠고상
스페인 마리 오보타 건축가가 설계한 '통일기원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미사시간에만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마더 데레사 수녀, 피에트 렐치나의 비오 신부(오상의 비오 신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얼마 전 EBS TV '건축 탐구'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남양 성지 대성당을 직접 만날 수 있었던 성지 순례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인 마리 오보타가 설계하고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현대 조각가 줄리아노반지의 작품이 제대를 장식한 것으로 유명해진 성당! 아직도 진행 중인 성당엔 올해 파이프 오르간도 설치된다고 한다.
코로나가 우리들의 발걸음을 자유롭게 할 때 다시 찾아오면 멋진 성전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