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월)

어제는 인천에서 모처럼 처가집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 온 지 3일째.  오늘은 수원교구의 성지를 둘러볼 계획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안양시의 수리산 성지.

수리산은 최양업 신부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신유박해 이후 많은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살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본디 충청도 청양 다락골 사람이었던 최경환 성인은 3대째 신앙을 지켜 왔고 지역에서 당당한 풍모를 자랑하던 집안이었다. 장남 최양업이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로 떠난 후 고발을 빙자한 수많은 협잡꾼들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과 함께 서울 벙거지골, 강원도 춘천 땅으로 유랑길을 나선다. 하지만 계속되는 배신자들의 등쌀로 다시 인천 부평을 헤매야 했고 최후에 정착한 곳이 바로 수리산 깊은 골짜기였다.

 

순례자 성당 옆에 순교자들의 현양비가 줄지어 있다. 순교자 현양비는 이 지역 병인박해 순교자 중 기록이 남아있는 류베드로회장, 유안드레아, 유바오로, 유요셉 순교자의 기록이 새겨져 있으며, 최경환 성인, 이성례 마리아, 이 에메렌시아, 범라우렌시오 주교, 나베드로 주교의 생애가 적혀있으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천주가사인 사향가 등이 적혀있는 비석이 설치되어 있다.

 

성당 위쪽으로 올라가니 수암천 건너편에 최경환 성인 묘소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따라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을 걷다보면 묘소에 이른다.  수리산 성지의 십자가 길에는 최경환 성인을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최경환 성인은 1838년 수리산에 들어와 담배를 재배하면서 박해를 피해 온 교구들을 모아 교우촌을 가꾸면서 열렬한 선교 활동을 펴던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된 후에도 신자들을 끊임없이 격려하였고 심한 형벌로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의 부인 이성례 마리아는 어린 자녀 때문에 신앙이 한때 흔들렸지만 배교를 취소하고 1840년 서울 당고개에서 순교하였다.

 

묘소 아래에는 야외 미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고택 성당은 최경환의 가족이 살았던 터에 성인과 그 가족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작은 성당이다. 굳게 닫힌 출입문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순례객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순례자 성당 개울 건너에 있는 성례 마리아의 집.   순례객을 위한 쉼터(?)

 

 

옛 교우촌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수리산 성지도 아주 깊고 후미진 산골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개발의 영향으로 안양역에서 4km밖에 떨어지지 않는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당고개 성지의 글을 다시 한번 옮겨본다.

당고개의 순교자이면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부인이요,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 마리아만은 시복 조서에서 제외돼 성인품에 오르지 못했다. 그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젖먹이 자식이 아사를 당하자, 나머지 네 아들의 목숨만이라도 살리겠다는 일념에 잠시나마 배교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된다.

 

본래 부모와 함께 어린 아이를 투옥시키는 일은 국법에도 없었으나 큰아들 최양업을 사제로 봉헌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 보낸 이 집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어머니와 함께 옥에 갇힌 아이들은 국법에도 없는 일이라 밥도 나오지 않고 어쩌다 한 덩어리 밥이 나오면 어린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굶기 일쑤였다. 세 살짜리 막내는 그나마도 얻어먹지 못해 빈 젖을 빨다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린 자식의 죽음을 눈앞에서 당한 어머니는 자칫 네 자녀를 모두 죽이고 말 것만 같아 짐짓 배교하겠노라고 하고 옥을 나왔다. 지극한 모성애와 극도의 슬픔 속에서 그는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성례 마리아는 아이들과 문전걸식으로 목숨을 부지하다가 남편 최경환이 홀로 감옥에서 겪을 고통을 생각하고 아이들이 동냥 간 사이 다시 남편 곁으로 돌아와 다시금 갇힌 몸이 되었다.

 

6세부터 15세까지 네 형제가 부모를 가둔 옥에 찾아와 울부짖자 철이 든 맏이 희정은 어머니가 다시 배교할 것을 우려해 어린 동생들을 달래 발걸음을 돌렸다. 그 후 동냥한 음식을 틈틈이 부모에게 넣어 주면서 이성례가 참수되기 하루 전 어린 형제들은 동냥한 쌀과 돈 몇 푼을 들고 희광이를 찾았다. “우리 어머니가 아프지 않게 한칼에 하늘나라에 가도록 해주십시오.” 이에 감동한 희광이는 밤새 칼을 갈아 당고개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본 어린 4형제는 동저고리를 벗어 하늘에 던지며 용감한 어머니의 순교를 기뻐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모성을 초월해 순교한 이성례 마리아는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한국의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가족에 얽힌 이야기가 새삼 가슴을 저리게 한다.

최경환 성인의 조부인 최한일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 탄압을 받아온 최씨 가문.

그들의 희생이 있어 지금의 한국의 천주교가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닐까?

하늘나라에서 성가정을 이루고 편히 지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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