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수)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의 하슬라 아트월드를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괘방산 등명낙가사
여기저기 오가며 등명낙가사 안내 이정표는 여러번 보았지만 발걸음을 디딘 건 오늘이 처음.
괘방산 중턱에 있는 등명낙가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 세워서 수다사라고 했다. 고려에는 등명사가 중창되어서 많은 스님들이 수도 정진한 사찰이다.
조선 초기에 배불숭유 정책으로 인해 한양에서 정동의 위치에 있는 등명의 불을 끄면 불교가 망한다는 생각으로 등명사를 유생들의 상소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왕의 눈에 안질이 생겨 점술가에게 물어보니 정동에 있는 큰 절에서 쌀 씻은 뜨물이 동해로 흘러 용왕이 노하여서 안질을 앓게 되었다고 하자 왕명으로 사찰을 폐사시켰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1956년에 옛터에 절을 중창하고 낙가사라고 개칭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에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등명낙가사라 부르게 되었다.
'등명(燈明)'은 지역 이름이기도 하지만, '부처님 전에 올리는 촛불'로 '부처님 법을 펴는 일'을 상징한다고 한다.
'낙가사(洛伽寺)'는 '관음보살이 머문다'는 뜻이란다.
괘방산 등명낙가사 일주문 아래에 이곳이 정동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부도(사리탑)이 놓여있다. 오래된 사찰에서 보는 부도가 아닌 근래에 만들어진 듯한 모습이다.
1950년대 이후 중창된 사찰임을 엿볼 수 있다.
길 건너에 있는 철분 성분이 있는 등명감로약수.
사찰로 오르는 오솔길엔 세심문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 극락보전, 영산전이 있는 사찰 마당에 오르기 위한 세개의 문 중 마지막 문인 불이문
보통의 사찰은 대웅전이나 극락보전 중 한 건물만 있는데, 이곳은 영산전까지 3개의 건물이 나란히 서있다.
범종루
깨끗하고 산뜻한 사찰의 건물과 시설물이 오래전에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산사의 고즈넉하고 고고한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창건과 함께 선덕여왕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는 등명사지오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이 사찰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듯 하다.
등명사지 5층석탑 위에 자리한 약사전
탑의 동쪽으로 동해바다를 관망할 수 있는 등명루각이 있다. 등명루각 현판에는 관일루라고 씌여져 있다.
사찰을 돌아보고 일주문 방향으로 나오니 일주문 사이로 동해바다가 보인다.
조선시대 배불숭유정책으로 폐허로 남았다가 근래에 다시 중창된 사찰 등명낙가사
조선의 배불숭유정책이 없었다면 옛 고승들이 창건한 사찰이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더 많은 위로가 되었을텐데-----
물론 한국전쟁으로 인해 화마에 휩싸인 사찰들도 많지만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어서인지 옛스러운 사찰이 아니면 뭔가 낯선 느낌이 든다.
사찰을 종교적 관점이 아닌 관광명소로 보기 때문일까?
이 곳 등명낙가사는 오래되지 않은 중창된 건물과 석구조물이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