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월)

남양 성모 성지에서 나와  화성시 양감면의 요당리 성지에 15:40경 도착

향나무 생울타리로 둘러싸인 성지 안에는 하얀 눈이  겨울임을 실감나게 한다.

 

요당리 성지는 복음이 언제 전파 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와 은이 공소(현재의 양지)와 깊이 연계되어 활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렸던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 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을뿐 아니라, 기해년 (1839년)과 병인년 (1866년)에 일어난 두 번의 박해를 통해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지 였다.

 

탁트인 넓은 잔디광장을 중심에 성모자상이 자리하고 가장 안쪽에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묵주 기도 길이, 오른쪽으로는 이숙자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제작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유서깊은 요당리 성지에는 다음과 같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얼이 서려 있다.

첫째, 장주기(요셉, 1803-1866) 성인과  장 토마스(1815-1866) 복자의 출생지이자 신앙의 터전이었고, 이곳 출신 순교자로서 지타대오, 림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홍원여(가를로)가 있다. 그리고 아울러 장주기(요셉) 성인의 친인척이자 이곳 출신 순교자로 추정되는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방씨 등이 있다.
둘째, 교회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그 책임을 맡았고 끝내는 순교하신 민극가(스테파노, 1787-1840)성인과 이곳에서 공소회장을 맡으며 신앙전파에 힘쓰다 순교하신 정화경(안드레아, 1808-1840) 성인께서 활동하셨던 곳입니다.
셋째,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셨다가 순교하신 앵베르 주교와 그의 피신을 돕다가 순교하신 손경서(안드레아, 1799-1839) 순교자의 얼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순교자 묘역

 

2010년 봉헌된 요당리 성지 대성당

 

대성당 앞에 세워진 장주기 요셉 성인은 한국 천주교회의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수원의 양간(현재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출신으로서 성인이 되신 유일한 분이다.
1827년경 고향인 양간에서 세례를 받고 1836년 양지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박해를 피해 배론 성지로 이주(1843년)한 후 자신의 집을 신학교로 쓰도록 봉헌하고, 신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등 신학생 및 선교사들의 뒷바라지에 헌신했다.

1866년 3월 충청도 보령의 고마 수영(대전교구 갈매못성지)에서 다블뤼 주교 등 4명과 함께 참수 치명하였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소성당과 사무실 건물

 

사계절 푸른 향나무 울타리가 포근하게 성지를 둘러싸고 있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요당리 성지는 '장주기(요셉) 성인의 출생지이고, 예전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던 곳이다'라는 정도로 치부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최덕기(바오로) 주교는 2006년 9월 26일 성지 전담 사제를 파견함으로써 본격적인 성지개발이 이루어졌다.

 

짧은 기간에 이처럼 아름다운 성지를 이루어 낸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또한 신부님과 신자들의 각별한 기도와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수고하신 모든 분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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