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6일(수) - 영국, 아이슬란드 여행 5일차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더블린 시내 관광을 하는 날!!

 

더블린(Dublin)은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주요 항구로써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교통의 중심지이다.

더블린이의 어원은 '검은 물웅덩이'를 의미하는 둘린(Dubhlinn)에서 왔다고 한다. 당시에 마을 안쪽으로 물길이 나있어 선박을 정박하던 웅덩이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흔적은 지금도 더블린 성 뒷편에 남아있다. 바이킹이 점령한 후 더블린은 일대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번성하였다.  한때 섬유산업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맥주 생산업체인 '기네스브루어리회사'는 아일랜드에서 제일 큰 기업체이자 수출업체이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맥주의 생산과정을 볼 수 있는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를 방문하였다. 10층 정도의 건물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기네스의 역사와 생산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가 10:00에 도착했는데 벌써 많은 방문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입장료 26유로)

 

기네스맥주와 컵을 형상화 한 조형물.

 

하프 모양의 기네스 로고

 

제일 위층에서 기네스 맥주 한 잔을 시음할 수 있다. 더블린 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의 맥주 한잔!

시간적으로 맥주를 먹을 시간은 아니지만 창가 테이블에 앉아 더블린 시를 내려다 보며 마시는 기네스 맥주가 특유의 향기를 뿜으며 입 안에서 맴돈다. 오후에 왔더라면 시음을 더 맛있게 할 수 있었을텐데------ (오전엔 입장료 할인)

 

기네스 스토오 하우스에서 버스를 타고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주변에서 하차하여 더블린 시내관광을 하였다.  성당 옆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공원을 지나 붉은 벽돌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로 나선다.

 

대로변의 크라이스트처치 성당(현재 영국 성공회 성당으로 사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 한장을 남긴다.

 

더블린 중심을 흐르는 리피강 남쪽의 건물 숲을 가이드의 '소지품 주의'  경고를 들으며 지난다.  주중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다. 갑자기 일행의 뒤쪽에서 '소매치기'란 외마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 가보니 아내가 소매치기를 당한 주인공이 아닌가?  어깨에 맨 가방의 지퍼를 열고 현금이 든 종이 지갑을 빼앗아 간 것이다. 다행히 여권과 핸드폰은 무사!  유로화와 달러화를 합쳐 우리 돈으로 약 35만원 정도를 아일랜드의 손재주 좋은 인간에게 기증을 한 꼴이 되었다.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은 내가 보관하고 있었으니 무사했고,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란 아내를 진정시키고 일행들도 놀라 아내를 위로하고, 다행히 아내도 큰 피해가 없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당했던 권총강도 사건의 악몽이 머리를 스쳐간다. 그 때의 쓰라린 경험 덕분에(?) 오늘의 일을 쓴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아내와 손잡고 다니지 않은 내가 유죄인 것 같다.

 

더블린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축구경기를 응원하며 맥주를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아이리스(Irish Pup)문화이다.  아이리쉬 펍을 대표하는 명소 중의 하나가 리피강 남쪽에 위치한 22개의 전통 아이리쉬 펍(Irish Pub)들이 몰려 있는 템플바(Temple Bar) 지역이다. 중세풍의 거리에  펍(Pub)과 레스토랑, 갤러리 등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1840년에 문을 열어 160년의 역사를 지닌 템플바 펍은 온통 꽃들로 꾸며진 붉은 벽돌 아래 빨간색으로 치장한 예쁜 건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트램이 지나고 있는 더블린 시내와 리피강의 여유로운 모습

 

트리니티 대학은 1592년 설립된 아일랜드 최초의 대학으로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 신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이다. 트리니티 대학은 성공회 교도들만 입학을 허용하다가 1873년부터 모든 종교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예술, 인문, 사회과학 등이 유명하며 영화를 전공하는 우리나라 학생들도 유학온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선정된 이 학교의 도서관 '켈스의 투어'(성인 18.50 유로)는 예약 시간이 밀려 들어가 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도서관에는 9세기에 만들어진 복음서 '켈스의 서'를 포함하여 많은 고서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켈스의 서'는 9세기 초 스코틀랜드 아이오나 지방의 수도승들이 복음 전달을 목적으로 만든 성서 필사본인데 필사자 4명과 삽화가 3명이 손으로 직접 쓰고 색을 입히고 그린 아름다운 책이란다. 트리니티 대학에 옮겨지기 전까지 아일랜드의 켈스 수도원이 소장하고 있어 '켈스의 서'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넓은 잔디밭에는 햇빛을 즐기는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여가를 즐기고 있다. 왼쪽 건물이 박물관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구도서관이다. 오른쪽 뒤로 신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켈스의 서와 롱룸 도서관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인터넷에서 살펴보았다.

 

신 도서관 앞의 구 모양의 조형물은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지구 안의 지구' 란다. 동상의 안에 있는 구는 지구를 상징하고 밖에 있는 구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대학의 상징인 종탑은1853년 만들어졌다. 종탑의 종이 울릴때 종탑 아래를 지나면 그 학생은 낙제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 학생들은 탑 아래로 잘 지나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트리니티 대학을 나와 더블린의 랜드마크인 더 스파이어를 찾아갔다.

 

오네콜 스트리트(O'Connel Street) 중심에 서 있는 높이 120m의  'The spire'는 아일랜드의 GDP가 영국을 넘어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더블린시내 투어는 성 패트릭 성당을 향해 나아간다.

 

더블린 시내 중심지역에 위치한 성 패트릭 성당은 패트릭 성인이 AD 450년 아일랜드에 머물던 때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행했던 우물가에 세운 교회다.
성 패트릭은 영국 웨일즈의 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6세에 아일랜드 해적의 습격을 받고 끌려와 6년동안 노예로 지냈다. 그후 어느날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집으로 가도록 도와 주었는데 약 320km이상을 걸어가 아일랜드 해협을 배로 건너 고향 웨일즈로 갔다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부가 되었고 패트릭은 1883년 성직자가 되어 자신이 노예로 있던 아일랜드로 돌아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고, 그의 노력으로 섬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다. 지금도 아일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교회가 60개가 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이다. 지금도 더블린 시민의 90%가 카톨릭 신자 라고 한다.

 

기억의 나무를 통해 방문자들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된단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연대깃발은 군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의 제목처럼 전쟁 속에서 희생된 군인의 정신과 기억은 빛이 바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깃발과 같이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의 상당수는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제작되었다. 많은 예술가들과 회사들이 참여하였고 따라서 다양한 스타일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을 볼 수 있다.

 

성 리차드 Wnately 더블린 대주교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 교회의 건강을 위해, 인간의 선함을 위해  32년 동안 걱정에 지쳤습니다.

그는 감독으로 일하다가 주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1863년 10월  8일

 

진정한 화해를 의미한다는 이 곳에서 40여년을 한께 한 아내와 손을 잡았다.

남은 여생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사랑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삽시다.

 

성당 뒷편의 기념품 판매대.   판매 이익금, 성당 입장료(8유로) 등은 성당을 개보수하고 유지하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성당 건물 뒷편의 묘지에는 아마도 선종하신 주교님과 신부님들이 모셔져 있겠지?

 

더블린 시내 관광을 마치고 166km 떨어진 북아이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로 이동했다. 퇴근 시간과 겹쳐 길이 밀려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골프장 리조트의 2층 방에서 창문을 여니 시원한 잔디밭과 저녁노을이 보인다.

 

오늘은 주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도를 살펴보니 우리는 더블린의 중심 한부분만 돌아본 것 같다. 리피 강가를 산책도 해보고 싶고, 아름다운 더블린의 유적을 좀 더 돌아보고도 싶다.  더블린의 맛만 살짝 본 느낌!  패키지 여행의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아닐까?

 

더블린 시내에서 젊은이에게 현금 35만원을 기부하고 왔으니(소매치기 당하고 왔으니) 착한 일(?) 하나 한 것 같다. 그 젊은이가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기를 바랄뿐. (펍에 가서 부어라 마셔라 하지 말고)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을 보며 꿈나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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