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일)

 

어제 저녁 막내 딸 생일모임으로 서울에서 아침을 맞았다.

내일(월) 집안일이 있어 오늘 서울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한다.

일요일 내내 집안에만 머물기는 답답할 것 같고,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가 집을 나섰다.

 

강화도의 천주교 성지를 돌아보기 위해 09:30경 집을 나섰다.

일요일 아침이어서 올림픽대로가 한가해 강화도까지 한시간 여만에 도착!

강화는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 고려시대부터 외세와 격렬하게 충돌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강화도 입구에 있는 갑곶 순교성지

 

 

 

11:00 갑곶 순교성지 성당 미사에 참례했다.

 

 

 

강화대교쪽을 바라보고 계신 예수님 (야외미사 제대 뒷편에 계신 예수님)

 

 

 

성모님상

 

 

 

갑곶 십자가

 

 

 

순교자 삼위비

천주교인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이 갑곶돈대에서 효수되었다는 문헌에 따라 성지로 조성하였다.

이분들의 세례명, 후손, 생애 등의 기록은 없지만, 

온전한 믿음 그 하나를 지켜낸것만으로도 순례자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성지가 된것이다.

 

 

 

순교자인 아버지 박바오로의 삶을 이어받아

평생동안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순교자들의 삶을 정리하여 살았던 박순집(베드로)의 묘

 

 

 

기도하시는 예수님 상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50주년 기념 영성센터

 

 

 

강화 진무영은 조선시대 해상 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이며,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하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 강화 관청에서는 천주교인들에 대한 극심한 고문이 자행되었고,

서울 애오개 회장 최인서 요한, 장주기 성인의 조카 장치선, 박순집의 형 박서방, 조서방 등이 이곳 진무영에서 순교하였다

 

 

 

이곳은 1968년 산업화의 그늘에서 고통당하던 심도직물 등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한국 천주교회와 가톨릭 노동청년회가 그 첫 발을 내디딘 가톨릭 노동사목의 시작 터라고 한다.

 

 

 

진무영 성지는 강화 성당 내에 위치하고 있다.

 

 

 

강화성당 성모상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적게는 1만명, 많게는 3만 명의 순교자가 있지만, 그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는 2천명도 채 안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순교자들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01년 인천교구에서는 강화도에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을 조성하여,

무명의 한국 순교자에게 봉헌하였다.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성당

 

 

 

위로의 주님 상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 33)

 

 

 

성모당 앞에서 촛불을 봉헌하고 가족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일만 위 순교자 현양탑

 

현양탑 상부의 청동 십자가와 순교자들의 행렬은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신 예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을

따라간 많은 순교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현양탑 상부 양쪽 모서리가 잘려 나간 것은 지상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말하고 있다.

 

중앙에 하늘로 뚫린 '부활의 십자가'는

그 아래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부활의 십자가 좌우에는 머리에 칼을 쓴 '무명 순교자' 두 분의 목숨을 바쳐 증거한 신앙의 표징으로 서 있다.

 

현양탑 아래 문은 순교자들이 남겨주신 영원한 사랑과 희망의 문을 상징하고 있으며,

오늘도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다.

 

 

 

무명 순교자 상

 

이 조형물을 만든 익명의 작가는

고인돌과 참수형을 당하는 순교자를 연상케 하고자 이 무명순교자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조형물은 양 손이 뒤로 묶인 채 돌(단두대)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죽음의 칼을 기다리고 있는 형태이며,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자신도 모르게 던져버릴 것을 걱정이라도 한듯이 등과 가슴을 관통하도록 꽂아 두었다.

 

'이 모두를 받아들입니다. 당신의 이름으로------'라고 돌에 새긴 것으로 보아,

가는 무명 순교자상의 주제를 '받아들임'으로 묵상한 것 같다.

또한 무명 순교자상 바로 아래 있는 돌에는 '그대의 이름은----'이라고새겨져 있다.

우리가 무명 순교자에 대해 궁금해 할 때,

무명 순교자상은 도리어 우리의 이름과 삶의 위치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명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순례를 왔지만,

무명 순교자상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되묻고 있다.

 

 

 

박해시대 때 교우들은 박해를 피하고 또 생계수단으로 옹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옹기 안에 성서나 묵주 등을 숨겨 다니거나 또 언제 닥칠지 모르는 '그 날과 그 때'를 대비하여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옹기가 옹기 만든 이를 탓할 수 없듯이(이사야 49. 9)

순교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임'의 영성을 삶으로 증언하고 있다.

 

 

 

다락골 줄무덤

 

 

 

묵주 연못

 

 

 

침묵 중에 혼자 걷는 묵주기도 4 신비길

 

 

 

물고기란 그리스어로 '익투스'라고 한다.

익투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뜻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물고기 상징을 통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의사소통을 대신하거나, 방향을 가리키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곳 현양동산의 물고기는 '무명 순교자 상'쪽을 향하고 있다.

 

 

 

 

 

김포 옛 성당은 1957년 12월에 준공된 석조 성당. 지금은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단다.

 

 

 

인천교구 제2대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2015년 김포 옛 성당을 성체 성지로 선포하였다.

 

 

 

뒷동산의 예수 성심상

 

 

 

뒷동산의 야외미사 터

 

 

 

현재의 김포 성당

 

 

 

 

천주교 성지는 아니지만 강화도에 온 김에 찾아가 본 성공회 성당

강화도 성공회 성당(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은 고요한 초대 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

 

 

 

외부는 한옥, 내부는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을 간직한 개화기 시대의 건축물

 

 

 

성공회 사제관도 한옥

 

 

 

 

서울에 머무는 시간을 활용해 방문한 강화도 성지 순례길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가고 오는 길이 막히지 않아 어려움 없이 잘 다녀왔다.

신종 코로나로 인해 이동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주님께서 성지순례를 하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셔서 베푸신 사랑의 결과인가?

 

오늘 갑곶 순교성지에서 참례한 미사.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참 좋았다.

강화도에 신심을 다질 수 있는 성지가 이렇게 잘 조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인천교구의 성지 개발을 위한 노력을 엿본 하루였다.

 

오늘 저희 발걸음을 이끌어 주시고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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