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토)
서울에서 나흘 밤을 자고 어제 오후에 홍천으로 돌아왔다.
해가 갈수록 홍천에서의 생활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기 때문인가?
오늘은 춘천시에 있는 천주교 성지를 순례하기로 했다.
춘천을 가려면 홍천읍내를 통과해야 한다. 홍천읍내에 있는 홍천성당부터 순례하였다.
홍천 성당은 1923년 송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여 설립되었다.
홍천 본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송정 공소는 1890년 송정리 버덩말에 서병익 바오로 신부의 친족이 신자 몇 가족과 함께 정착하며 시작되었다.
1936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고 명칭도 홍천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현재의 석조 성당은 최동오(아타나시아) 신부가 1954년 짓기 시작하여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조 필립보 신부에 의해 1955년 준공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950년대 석조 건축물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보존한 것이 인정되어 2005년 국가 등록 문화재 제162호롤 지정되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아일랜드 신부들을 이곳 홍천 성당에 감금하였다.
그런 중에 길 헨리 신부가 병사하기도 했다.
예수 성심상과 성모상
곰실 공소는 엄주언 마르티노가 세운 공동체로 현 춘천교구의 요람이다.
1910년경 곰실에서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로 시작, 점차 교우 수가 증가하여
1920년 제대를 제대로 갖춘 공소를 세웠고, 그해 9월 김유룡 필리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모시면서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28년 지금의 죽림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현재의 공소 건물은 2008년에 중창되었으며, 2009년에 춘천교구의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춘천교구 주교관은 춘천교구장 주교의 거처이자 선교사들이 교구 일을 돕거나 기거하는 거점으로 1958년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 건립하였다.
춘천교구청
교구청 안 마당에 세워져 있는 성모상
교구청 건물 안의 성모상
춘천교구 신앙교육의 요람인 교육원 1959년 주교관과 같은 분위기로 지어졌다.
교육원은 건축사적 보존 가치와 교구의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9년 2월 등록 문화재 제 743호로 지정되었다.
교구청 입구에서 성지 순례 스탬프를 찍는 아내
죽림동 주교좌 성당(등록 문화재 제 54호) 전경
춘천교구를 사목하였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1950년대 건축한 석조 성당
죽림동 주교좌 성당 뒤뜰에 있는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
춘천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곳인 동시에
신앙을 증언하고 목자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다가 희생된 순교자들이 함께 모셔진 곳이다.
하느님의 종으로서 충실히 살다가 생을 마친 순교자들과 성직자들이 잠들어 부활을 기다리는 영원한 안식처이다.
순교자 고 안토니오 신부를 기리기 위해 1956년에 지은 소양로 성당 (국가 등록 문화재 제161호)
성 콜롬반 외방선교회 제임스 버클리(James Buckley) 신부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총살된 소양성당 주임 신부 콜리어(고 안토니오 신부)를 기리고자 건립한 성당이다.
국내 최초로 근대적 양식을 도입한 교회 건축물인 이 성당의 평면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 반원형을 기본으로 하여 중앙 제단을 중심으로 신자석을 부채꼴로 배열하고 있다.
오늘은 춘천에 위치한 성지 네 곳과 홍천 성당을 순례했다.
1950년대 지어진 홍천성당, 주교관, 죽림동성당, 소양로성당이 국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에서 신앙을 증거하신 순교자들에게 잠시나마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지가 있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성지를 순례하며 믿음을 다져보는 귀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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