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수)
오늘은 해파랑길 29코스를 걷기로 계획된 날이다.
삼척시 호산에서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비가 제법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를 보니 삼척시는 오늘 종일 비가 올거라는데------
아내와 의논한 결과 오늘 해파랑길 도보 여행은 포기하고
동해안에 있는 천주교 성지를 돌아본 후 홍천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제일 먼저 찾아간 삼척시 성내동 성당
삼척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예수성심상
성모 동산
성당 뒤쪽에 진 야고보 신부 순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초대 주임신부인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진 야고보 신부는
1936년 한국에 와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투옥과 연금을 당했고,
해방 뒤에는 홍천 본당 주임을 거쳐 1949년 성내동 성당에 부임하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성당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거부하다가
공산군에 체포되어 1950년 7월 4일 삼척 오십천 변에서 피살되었다.
인근에 가매장 되었던 그의 시신은 1951년 춘천 죽림동 성당 성직자 묘역에 안치되었다.
십자가의 길
두번째로 찾아간 동해시의 묵호 성당
1940년 강릉 임당동 본당의 관할 공소로 시작된 묵호 성당
1949년 4월 라 파트리치오 신부가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한국 전쟁 중 공산군이 성당을 점령하자 당시 전교 회장의 집에 잠시 피신하였지만
결국 체포되어 이송 도중 밤재굴에서 순교하였다.
교우들은 양들을 두고 피신할 수 없었던 착한 목자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본당 마당에 순교비를 세웠으며 시복시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세번째로 찾아 간 순교자 라 파트라치오 신부 순교 터
라 파트리치오 신부는 1940년 사제품을 받고 1947년에 입국, 1949년 묵호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한국전쟁 중 순교한 라 신부의 유해는 1951년 죽림동 성당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묵호 성당 신자들은 라 신부의 순교와 얼을 기리기 위해
신부의 유해를 수습한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 16-2번지에 순교비를 세우고, 도보 순례를 하였다.
순교비가 영동선 터널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기차 운행으로 인한 위험때문에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 47-3번지에 새로 성지를 조성할 계획이란다.
네번째로 찾아간 금광리 공소
병인박해 때에 전라, 충청, 경기도 교우들이 피난하기 위해 영동으로 넘어와
깊은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며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이웃에게 신앙을 전파하며 생활하였다.
금광리 공소는 한때 영동 지역의 전교 거점으로 한때 신자수가 많아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나
1923년 주문진으로 본당을 옮기면서 다시 공소가 되었다.
현재 금광리 공소는 노암동 본당의 공소이다.
이곳은 박해를 피해 정착하여 오랫동안 신앙을 지켰던 이들이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다섯번째로 찾은 강릉시 임당동 성당 - 순교자 심능석 스테파노, 이유일 안토니오
1866년 병인박해 이후에 신자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져,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영동 지방까지 피신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토기업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었다.
1868년 강릉 굴아위에 살던 심능석 스테파노와 이유일 안토니오가 잡혀 서울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심 스테파노는 자신을 찾는 포졸에게 떳떳이 천주교인임을 밝히고 붙잡혔다고 한다.
1955년 준공된 임당동성당은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에 국가 등록 문화재 제 457호로 지정되었단다.
성당 내 유치원 입구의 예수상
6번째로 찾아간 강릉 대도호부 관아
관아는 현재의 시청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사법 기능도 있어 죄인을 심문하거나 옥에 가두기도 하였다.
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심문하여, 신자들이 관할 옥에서 순교하기도 하였다.
오늘 마지막으로 찾은 옹기 마을 신앙촌 행정공소
행정 공소는 본디 외교인촌이었으나,
1924년 경에 옹기점 마을회장이었던 김세종 라파엘이 일가를 데리고
양평에서 이주하여 옹기점 교우마을을 이루면서 시작되었다.
한때는 마을의 50세대 전체가 옹기를 굽는 교우들이었다.
공소 내에 있는 아오스딩 쉼터
해파랑길 29코스를 도보여행하기로 했던 오늘! 비가 와 해파랑길을 포기하고 돌아 본 성지!
이땅의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천주교회가 있을 것이다. 여러 성지를 돌아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가슴 속에 자리를 잡는 느낌이다. 매 미사때마다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를 맹목적적으로 드려왔는데 이제 어렴풋이 순교하신 그 분들의 깊은 신앙심이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오늘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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