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9일(목) - 대학 동기들과의 전북 여행 3일차
전주의 한옥 Stay 하늘기와에서 전북 여행 3일차 아침을 맞았다. 전주의 아침 풍경을 맞이하기 위해 전주천을 따라 천주교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까지 아침 산책을 했다. 산책 후 한옥마을의 김치명인이 운영하는 신뱅이에서 모주 한 잔을 곁들인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고려 공민왕 3년(서기 1354년)에 최초로 건립된 전주향교는 전북대학교의 모태이기도 하단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오가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높이가 32m인 수령 420년의 은행나무는 전주향교가 이곳으로 이전해 올 때 (1603년)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나무는 향교에는 필수적으로 심는데, 그 이유는 은행나무가 선비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전주향교를 돌아보고 찾아간 김제시 금산면의 금산사 입구에는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후백제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는 석성의 허물어진 홍예문이 2010년대에 복원되어 서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원년(599년)에 창건되었고 8세기 때 승려 진표가 중창했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군이 호남 지역에서 노략질을 했던 당시 사찰을 방화하여 사찰 전체가 불에 타 없어지는 바람에 그 이전의 기록은 모두 사라졌다.
조선 인조 13년(1635년)에 중건되었고, 1934년과 해방 이후에 일부 법전을 재건해 오늘에 이르렀다.
인조 13년에 지어진 금산사 미륵전은 한국 사찰 중에서는 유일한 3층 법당이다. 내부는 누각 구조가 아닌 통층이라 위로 올라갈 수는 없다. 복원물이 아닌 한국 고건축물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3층 구조이므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었다.
미륵전의 미륵보살상은 옥내 입불로서는 세계 최대의 크기라고 한다, 삼존불 중 가운데 미륵불상 높이가 11.82 m, 좌측(법화림보살) 우측(대묘상보살)의 상은 8.8 m이다.
금산사 오층 석탑은 고려 경종 4년(979년)부터 성종 원년(982년)에 걸쳐 세워진 탑으로 본래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5층 석탑으로 남아있다. 정광여래 사리와 석가여래 사래가 모셔져 있단다.
금산사를 돌아보고 전주로 나오는 길에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금산교회를 찾았다.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 선교사 테이트가 처음 세웠으며, 1908년 한옥의 교회를 짓고 옮겨왔다. 교회 밖 목조 종탑이 교회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 하다.
전주시로 돌아와 한옥마을 근처의 청호회관에서 전주 막걸리를 겸한 나물 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인근의 한옥 카페 행원에서 차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원(杏園)은 1920년대 조선요리전문점 '식도원'이 운영되기도 했고, 한때는 요정으로 운영되기도 했단다. 지금은 국악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사랑하는 한옥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행원에서 나와 전주 한옥마을을 둘러보았다. '호남제일성'이란 현판이 붙어있는 풍남문(보물 제308호).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성벽과 나머지 성문은 자취를 감추고 이 문만 남게 되었다. 풍남문 주변으로 한옥마을을 비롯해 전동성당, 경기전 등의 관광지가 펼쳐져 있다.
전동성당은 천주교 순교 성지로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1791년) 때 순교한 자리이며, 신유박해(1801년) 때 유항검,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순교한 곳이다. 당시 이곳은 큰 장터가 가까이 있고 풍남문 밖이어서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 비로 그 순교터 위에 전동성당이 세워졌다.
성당은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했고, 진주성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고, 중국인 기술자들이 구운 벽돌을 올려 1914년에 세워졌다. 1981년 국가 지정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이년 전 성지순례 와서 촬영한 성당 내부의 모습
전동성당을 둘러보고 찾아간 경기전
1410년(태종10년)에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는데, 1442년(세종 24년)에 전주는 '경기전 (慶基殿) ',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으로 이름을 고쳤다.
'경기(慶基)'라는 이름은 조선의 국성(國姓)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인 '조선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며, 영정을 실제로 모신 정전 건물은 보물 제1578호다. 경기전 권역은 1991년 사적 제339호로 지정받았다.
경기전 동편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도 설립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다른 3곳의 사고가 모두 소실되는 와중에 전주사고의 실록들은 극적으로 옮겨져 소실을 면하면서 조선 역사 자료를 지켜냈다고 한다.
1410년에 세워진 경기전에서 1914년에 세운 전동성당을 1954년에 태어난 우리들이 2023년에 바라보고 있다.
경기전을 나와 전주 한옥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오목대에 올랐다. 오목대 정상 부분에 도착할 때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점점 굵어진다. 다행히 오목대가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오목대(梧木臺)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위치한 언덕을 일컫는 말이다. 경기전에서 약 동남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언덕의 정상은 평평하고, 그 아래에는 전주천,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언덕의 정상은 1380년(고려 우왕 6년)에 남원의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이성계(1335 ~ 1408) 장군이 승전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다. 이성계는 전주 이씨 종친이 있는 이 곳 전주에서 승전 축하 연회를 베풀면서, 중국 한고조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부르면서 역성혁명을 통한 천하제패의 흉중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오목대에서 비멍을 때리다가 빗줄기가 약해졌을 때 언덕을 내려왔다.
전주에 왔으니 비빔밥은 먹고 가야겠지? 한국관에 가서 놋그릇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06:30 전주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서울로 출발!
대학동기들과의 2박 3일의 즐거운 여행이 끝났다. 군산과 전주에 사는 친구의 초대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번 여행은 대학시절의 우정을 확인하고 나누는 참 좋은 기회였다. 덕분에 군산과 전주의 명소도 들러보고, 맛집에서 감칠 맛 나는 음식도 즐겨보았다. 두 친구에게 감사한다.
두 친구가 여행일정을 빡세게 짠 덕분에 다리 운동도 많이 했다. 눈과 가슴 또 다리까지 온 몸이 힐링된 기분이다.
(여행 첫날 - 20,031보, 둘째날 - 21,444보, 셋째날 - 17,938보)
밤마다 벌어진 이차 파티가 다음 날 행보에 조금의 영향은 있었지만, 그 맛이 또한 친구들과의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다음에 또 이런 여행의 기회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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