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화)

신리는 조선시대 천주교 수용 초기부터 형성된 교우촌으로 주민 400여 명이 모두 신자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신자들이 많았던 만큼 박해도 심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한 곳이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를 통해 마을 전체 신자가 순교하거나 피난할 정도였다.

신리 성지 주변의 수로가 삽교호까지 연결되어 있어,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였고,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머무르며 사목활동을 한 곳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밭과 우뚝 솟은 성전이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11월이라 잔디가 누렇게 변했고, 연못의 부들같은 식물도 모두 베어져 있어 좀 썰렁한 느낌이 든다.

 

넓은 잔디밭에 다블뤼주교,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위앵 루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 다섯 성인의 경당이 있다. 

 

경당 안에는 다섯 성인이 남긴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 그 뜻을 묵상할 수 있다.

 

성 손자선 토마스(좌상) : 나는 솔직히 죽는 것을 몹시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죽는 것보다 몇 천배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주님이시요,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성 위앵 루카 신부(좌중) : 좋으신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거룩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 제 피를 쏟을 수 있는 곳이 조선입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좌하) : 예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성 황석두 루카(우상) : 나는 이미 천당 가는 가거에 급제하였으니, 이 세상의 과거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성 오매트로 베드로 신부(우하) : 저는 어려서부터 가르침을 받아 천주교 신앙이 골수에 새겨졌습니다.

 

잔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순교 미술관

 

여름철의 녹색 잔디와 어우러진 멋진 모습의 박물관을 상상해본다.

 

건물 중앙의 통로를 통해 너른 예당평야가 보인다.

 

성지이기 전에 아름답고 예술적인  멋진 모습이 아닌가?

 

성당

 

예수님과 다섯 성인이 있는 앞 광장은 야외 미사를 지내는 곳이다.

 

종탑

 

이 집은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이자 제 5대 조선교구장 성 다블뤼 주교의 비밀 성당이자 주교관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가 순교하고 신리 교우촌이 파괴되면서 이 집도 주인을 잃었다. 이후 1927년 이 지역 교우들은 모금을 통해 이 집을 매수하여 천주교회에 봉헌하였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 나바위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곶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다.

 

평화로운 모습의 신리 성지 경당에서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성지 잔디밭에 이어져 있는 십자가의 길

 

순례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잠시 뒤돌아 보니 연못 속으로 아름다운 신리 성지가 투영된다.

 

처음 도착했을 때 넓은 잔디밭과 현대식 건물이 좀 낯설게 보였던 신리 성지

돌아볼수록 마음을 끌어 당기는 멋지고 평화로운 곳이다.

주변의 예당 평야와 어우러진 신리 성지는 다른 성지와 다른 현대적인 건축기법으로 특색있게 개발해 놓았다.

2000년대 이후에 현대적 감각으로 개발한 성지는 많은 신자들이 찾아 와 신심을 다지는 성지일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관광객이 찾아오는 충남의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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