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월)
요당리 성지에서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의 손골 성지에 이르니 17:00.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 앉기 시작한다. 성당이 쉬는 월요일의 늦은 시간이라 적막감이 감도는 성지내를 빠른 걸음으로 돌아보았다.
손골 성지는 광교산에 있던 교우촌이다. 손골이란 이름은 '향기로운 골짜기'라는 뜻의 손곡(蓀谷)에서 유래했단다.
박해시대 지방에서 신앙 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기해박해(1839년) 전후에 서울 가까이 이동하여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또한 손골 교우촌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는 곳이였으며, 이곳에서 피정도 하고 쉬기도 하였다.
손골 성지는 특별히 성 도리 신부와 성 오메트르 신부를 기념한다.
도리 신부는 한국에 입국한 후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고, 1866년 손골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오메트르 신부는 손골을 포함한 지금의 수원교구 지역에서사목을 하다가 체포되어 갈매곶에서 순교하였다.
손골은 순교지는 아니지만 손골에서 생활하던 신자 중에도 순교자들이 여럿 있다.
병인박해 당시 체포되어 수원으로 이송되는 중에 죽임을 당한 4명의 순교자들을 주변 사람들이 시신을 거둬 개울가 작은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돌무덤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돌무덤을 '서봉부락 무명 순교자 돌무덤'이라 불렀다. 이곳에 묻혀있던 순교자들을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소에 모셨다가 후에 손골에 모시게 되었다.
성전에서 내려다 본 손골 기념관은 2017년 기존의 경당을 보수해 개관했다고 한다.
손골 기념관 뒤쪽으로 올라가면 예수 성심상과 도리 신부 순교기념비가 있다.
1966년 도리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 고향 본당에서 도리 신부의 부모가 쓰시던 맷돌을 가지고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손골로 보내왔는데, 그십자가로 손골에 도리 신부 순교를 기념하는 비(碑)가 세워졌다.
광교산 자락에 세워진 십자가의 길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다.
늦은 오후 해질무렵에 잔설이 남아있는 고요한 성지를 바쁜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오가는 이가 없는 적막한 성지에는 고양이들만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듯 하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순교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비쳐 보이는 타국에 와서 우리에게 신앙의 길을 안내해 주고 순교하신 두 신부님께 고개 숙여 감사한다. 신부님의 희생이 있어 지금의 한국 천주교회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