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일)
죽산 성지에서 출발해 충북 진천군 백곡면의 배티성지에 15:30경 도착
이곳은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단다.
배티 성지는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1830년대에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대목구 신학교를 설립한 곳이다.
1997년 건립된 최양업 신부 기념관(대성당)
순례 도장이 보관되어 있는 빨간 우체통부터 언덕을 오르는 성지 순례길이 시작된다.
2014년 문을 연 최양업 신부 박물관.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박해 당시 순교자들의 교수형구로 사용되었던 형구돌이 전시되어 있다.
순례길에 우뚝 솟아있는 현양비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박해 당시 포졸들이 압송하던 교우들을 묶어 두었던 돌기둥이 순교현양비로 제막되었단다.
소성당 앞 순례길의 알퐁소 성인의 말씀(피정의 3대 실천 과제)
배티 성지의 윗성당(소성당)
소성당 앞의 최양업 신부 동상 앞에서 시작한 십자가의 길은 산상 제대까지 이어진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2km 거리의 6인 무명 순교자의 묘는 순례를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배티 골짜기에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배티의 '6인의 묘'와 '14인의 묘'에는 이름 없는 들꽃처럼 살다가 순교한 신앙 선조들의 줄무덤이 조성되어 있단다.
배티 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가운데 하나로 네 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단다.
첫째, 천주교 박해시대의 비밀 교우촌
둘째, 최양업 토마 신부님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 거점
셋째,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학교 설립지
넷째, 순교자들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