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일(월)

 

오전 10시에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를 다녀왔다.

12월 중순에 머리 왼쪽부분에서 통증이 와 신경외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지인이 뇌졸증으로 시술을 받았다는 비보를 듣고 머리 통증에 과민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1월 말에 촬영한 CT와 초음파 검사 결과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이다 보니 몸의 조그만 이상현상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진료비 20만원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별일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 중요하겠지.

 

진료 후 아내와 함께 강릉 나들이로 선교장을 찾았다.

11시에 시작하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선교장을 돌아보게 되었다.

 

예전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은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배다리마을(선교리)에 위치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이 적당히 자리잡고 있어 평화롭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선교장을 들어서기 전에 마주하는 사방연지(四方蓮池)와 활래정(活來亭)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는 연못에 1816년에 지어진 정자에는 조선의 많은 풍류가와 시인 묵객들이 어울여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피우던 곳이란다.

활래정은 온돌 부분과 누마루 부분이 있어 4계절 사용되었단다.  지금은 한겨울이라 연줄기와 잎만 앙상할 뿐 ----

 

선교장 출입문은 남녀용이 구분되어 있었단다.  (남녀의 구별이 철저했던 유교문화의 잔재?)

 

집안의 잔치나 손님맞이에 사용되었던 동별당 

 

1703년 최초로 지어진 안채주옥.   종부의 거처로 직계여인들이 함께 지냈다고

 

집안의 장자 도는 분가한 자녀들이 살았던 외별당.  현재는 선교장 후손이 살고 있단다.

 

선교장가의 신위를 모신 사당

 

1815년에 지어진 큰 사랑채인 열화당

개화기에 러시아인들이 세운 열화당 앞 차양 시설.

그 당시 러시아인들은 전국 곳곳에 이런 차양막을 설치했는데,

한옥에 어울리지 않는 차양막은 후에 대부분 철거되었고 현재는 두 곳만 남아있단다.

오랜 세월 철거하지 않고 보존되어 당시의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는 듯 하다.

 

선교장 손님맞이에 사용되었던 중사랑

 

행랑이 줄처럼 서 있다 하여 줄행랑의 안과 밖

관동팔경과 경포대를 유랑하는 선비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단다.

수 많은 풍류객들을 모신 선교장의 머슴과 아낙네들의 힘들었던 삶의 흔적이 아닐까?

 

열화당 후원의 초가정자.  자연 속 초가에서 머물며 소작인들의 애환을 공유했다고 한다.

초정의 뒷편에는 오죽 숲이 우거져 있다.

 

선교장 뒷쪽 야트막한 언덕위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청룡길과 백호길 입구

 

청룡길 에서 내려다 본 전통 한옥.  나그네들이 전통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있다.

 

송림 사이로 보이는 선교장

 

소나무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여본다.

 

 

백호길에서 내려다 본 전경

 

시인 묵객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홍예헌

 

한국의 전통 생활문화를 알리기 위해 2002년에 세운 한국전통문화체험관

 

선교장 생활유물 전시관과 유품 전시관

 

선교장에서 처음 만난 활래정 연못의 한여름과 한겨울의 모습 (인터넷에서 따온 사진)

 

병원 진료 후 찾아간 선교장

도착한 시간에 문화해설사 안내가 있어 선교장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해설사의 안내 없이 한바퀴를 돌았다면 선교장을 제대로 느껴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문화관광 해설은 매일 09시, 10시, 11시, 14시, 15시, 16시 정시에 진행된다.

 

선교장은 현재 남아 있는 가옥의 규모만도 건물 9동에 총 102칸으로, 조선시대 최대의 살림집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효령대군의 11세손인 이내번(李乃蕃, 1693~1781)이 배다리(船橋)에 터를 잡은 18세기부터 200여 년 동안 적어도 네 차례의 대대적인 확장과 변모를 거듭해 대저택 선교장이 완성되었다.

 

'대궐 밖 조선 제일 큰 집'으로서 손님접대에 후하여 아낌이 없고,

만석꾼 부호임에도 겸손하여 소작인들이 배고픔을 모르고 살게 함을 상생의 원칙으로 삼아 하늘에 덕을 쌓았다고 한다.

풍요로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타인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상생의 마음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나부터도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을 길러야겠다.

 

선교장 관람 후 시내 식당에서 복지리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강릉에 와서 선교장 한옥체험을 즐기시려는 분은 아래 내용을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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