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화) - 코카서스 여행 제 5일 차

아침에 Park Hotel 창밖을 보니 저 멀리 눈 쌓인 코카서스 산맥의 모습이 보인다. 호텔 앞에 넓게 자리잡은 포도밭이 이 지역이 조지아 와인 주생산지임을 알려주는 듯 하다. 호텔 앞 숲속의 너른 공간에는 투숙객을 위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주변을 한바퀴 산책을 하려고 문을 나서는 순간 개 두 마리가 접근한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산책을 포기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코카서스 3국은 어디를 가나 개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개 천국? 개 세상?

 

아침식사를 하고 시그나기로 가는 중에 보드베 수도원으로 방문했다.

시그나기 마을에서 2km 못 미친 곳에 위치한 보드베 수도원은 는 조지아 정교회 수도원으로 본래는 9세기에 건축되었지만 17세기에 리모델링되었단다. 보드베 수도원은 4세기에 조지아의 여성 복음 전도자 성녀 니노의 유적과 성골함이 안치되어 있을 정도로 그녀와 관계가 많은데, 조지아 주요 성지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수도하는 수녀님들의 섬세한 손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 놓았단다. 파란 하늘 저 멀리 눈 쌓인 코카서스 산맥이 보인다.

 

언덕을 내려가 올려다 보니 수도원이 더욱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수도원을 나와 조지아에서 규모가 작은 마을 중 한 곳인 시그나기로 갔다. 시그나기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잘 보존 된 역사유적들이 있어서 관광지로써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단다.  

 

시그나기 시청을 지나 백만송이 장미 노래의 주인공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는 조지아의 작은 마을 미르자니 지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나이 8살에 고아가 되었다. 그 후 트빌리시로 옮겨 부유한 집안의 종으로 일하면서 미술 공부는커녕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였다. 그의 그림에는 화려함보다는 단촐하고 원초적인 내용과 그 형상들이 반영되어 있다.

​성인이 된 후 철도노동자, 잡역부, 상점 간판 그리기 등으로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마을을 방문한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에게  첫눈에 반했고, 변변치 않았던 집과 그림, 심지어 자신의 피까지 팔아 엄청난 양의 장미꽃을 사서 그녀가 지내고 있던 집 앞을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그 꽃길을 배경으로 마르가리타에게 프로포즈하게 되고 결국 결실을 보는 듯 하였으나, 얼마 후 여배우는 마을을 떠났고 피로스마니는 삶의 의욕을 잃은 채, 극도의 빈곤과 결핍에 시달리다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박물관 앞에 놓인 조각상. 삶의 끈을 놓으려는 피로스마니의 지친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아닐까?

 

박물관 뒤로 돌아가니 시그나기의 멋진 풍광이 우리의 가슴을 들뜨게 한다. 마을 뒤로 코카서스 산맥이 보인다.

 

세계2차대전 메모리얼 기념 공원의 벽면에 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과거 소련에 저항하다 숨진 19세기 조지아의 유명한 문학가이며 철학자이며 계몽가였던 솔로몬 도다슈빌리의 동상이 서있다. 

 

시그나기 성벽 마을. 시간이 부족하여 성벽을 돌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시그나기를 알리기 위해 폐차를 활용해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길거리에서 양모로 짠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직은 가동되지 않은 분수 조형물 위에 숫사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내내 혼인신고가 가능해 많은 커플들이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한 장소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결혼신고서는 국적 상관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단다.

 

시그나기에서 2시간을 달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으로 Go!!  차창밖으로 전개되는 언덕길과 방목하는 가축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조지아인들이 꼭 방문한다는 영적인 성지 중 하나인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초원지대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난다. 6세기 초 시리아에서 온 성 다비드가 이곳에 동굴을 파고 수도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11-13세기 조지아의 황금시대에 800여 명의 사람들이 기거하고 19개의 수도원이 세워질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다고 한다.  1265년에 몽골의 침입으로 파괴되었으며 14세기경에 게오르기 5세에 의해 복원되었단다. 1615년에 페르시아의 샤 얍바스 1세 군대가 침략하여 수도사 6,000여 명을 살해하고, 사원을 파괴하였다. 이후 수도원은 19세기 말까지 문은 열어놓은 상태였지만, 유명무실하였다. 1921년 볼셰비키 정권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하여 수도원 내부 벽화들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조지아가 독립된 후 수도원의 복원에 나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수도원 곳곳에 바위를 손으로 직접 파고 깎아내어 만든 동굴들이 벌집처럼 늘어서 있다. 이 동굴들은 교회, 빵집, 대장간, 축사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암벽을 파서 만든 사도 요한 교회.  

 

수도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무지개 떡'처럼 보이는 붉은 단층의 멋진 자연경관이 있는데, 노아의 방주가 지나간 흔적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수도원 관광 후 약 2시간을 달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오늘도 5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이동한 강행군의 연속이다. 호텔에서 부페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꿈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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