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목)
용산 성직자 묘지에서 새남터 순교 성지에 오후 2:40이 좀 지나 도착했다.
아버님이 용산에 계실 때 설날과 추석 명절 조상님을 위한 합동 위령미사에 여러 차례 참례했던 새남터 순교 성당
새남터 순교 성지는 한국 교회 역사상 순교한 성직자 14명 가운데 11명이 순교한 곳으로 이 가운데 8명과 교회 지도자급 평신도 3명이 성인 반열에 오른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 성지이다.
새남터 성당은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서 용산구 서부 이촌동 199 땅을 매입하고, 서울대교구에서 1950년 순교 기념지로 지정하였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전통 한옥 스타일 주 건물과 목조 3층 형식의 종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87년 9월 1일 축성식을 갖었다.
새남터는 한양성 밖 한강변의 노들 나루터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얕은 모래 언덕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과 국사범과 같은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성삼문 등 사육신과 남이 장군이 처형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곳에 순교의 피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치명한 중국인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부터이다. 주 신부가 입국한 지 6년만인 1801년 신유박해 때, 자신 때문에 많은 희생자가 생기자 자진해서 의금부로 나섰고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 신부가, 7년 뒤인 1846년 병오박해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기해일기'를 작성한 현석문 가롤로가 이곳에서 참수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볼리외, 도리,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신부 등 6명의 사제들이 순교하였다.
2018.2.16 설날 위령 미사 때 촬영한 성전 내부의 모습
새남터 순교 기념 성당 안에 전시된 조선시대 새남터 형장에서의 처형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조선시대 순교한 성인들이 지녔던 성물이 벽면에 진열되어 있다.
성화
성탄절 구유 경배 조형물
순교자들의 모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지하 1층에 있는 순교자 기념관
새남터가 다른 성지와 다른 점은 사제들의 순교지라는 것이며,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군문효수형을 당한 장소라는 의미에서 한국 천주교회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전에 위령미사에 왔을 때보다 성지 순례로 오니 더 숙연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