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목)

구산 성지를 돌아보고 찾아간 남한산성 순교 성지

남한산성은 인조때 경기도 광주에 포도청과 여러 관청이 자리하게 되면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다. 

신유박해 때에는 첫 순교자 한덕운(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70년간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순교자는 36명 정도라고 한다.

 

남한산성의 피에타 상

한덕운(토마스) 순교자는 위험을 무릎쓰고 교우들의 시신을 찾아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 일로 체포되어 남한산성 동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한옥의 형태로 지어진 남한산성 순교 성지 성당

 

성당 앞에서 야외제대로 올라갔다.

 

백지사(白紙死)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전국에서 체포되는 천주교 신자 수가 많아지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사형의 한 방법으로, 죄인의 손을 뒤로 묶고 상투를 풀어 그 끝을 손에 묶은 뒤에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하였으며 그 다음에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한지(韓紙)를 붙이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게 하는 것이었다. 1866년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바오로)을 비롯한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 형벌로 죽임을 당하였다고 전해진다.

 

야외제대와 마주하고 있는 십자고상

 

십자가의 길

 

남한산성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첫 순교자인 복자 한덕운(토마스)을 비롯하여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아우구스티노), 김윤심(베드로), 김성희(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바오로), 정 베드로 등 36명에 이른다.

 

정면에서 바라본 성당

 

남한산성 도립공원 중앙 주차장에서 바라다 본 성당의 모습

 

남한산성 순교 성지 입구는 좁기도 하지만 주차하기에 장소가 협소하다.

남한산성면 산성리 234-1에 있는 남한산성 도립공원 중앙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주차료 3,000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오랜 시간 마음 편히 성지를 돌아볼 수 있다.

주차장에 들어가 우회전 해서 끝까지 가면 성지 입구가 나온다.

 

젊은 시절 가족과, 동료들과 수없이 다녀 온 남한산성 안에 순교 성지가 있었다니?

하긴 성당의 옆모습이 남한산성에 흔한 한옥 음식점과 큰 차가 없으니 관심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수 뿐이 없을 것 같다.

어디를 가나 간 목적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게 마련인가 보다.

 

다음부터는 남한 산성에 가게 되면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꼭 둘러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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