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7일(화)
치명자산 성지를 돌아보고 전주시내로 들어와 몇 군데 성지를 답사했다.
전주천변에 있는 초록바위는 남종상 성인의 아들 남명희와 순교자 홍봉주의 아들이 순교한 곳이다.
남종상 성인과 홍봉주는 1866년 서소문에서 참수되었다.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은 전주로 호송되었다. 이때 이들의 나이가 14살이었는데, 당시 국법으로 15세 미만의 소년을 사형에 처할 수 없어서 나이가 찰 때까지 옥살이를 시킨 후, 초록바위에서 교수형으로 처형한 뒤 시신을 전주천으로 밀어 넣었다.
전주천의 서천교는 조윤호 요셉 성인이 1866년 순교한 곳이다.
조윤호 성인은 최양업 신부의 복사를 한 조화서 베드로 성인의 아들로 1866년 부친과 함께 체포되었다. 아버지는 12월 13일에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되었고, 조윤호는 12월 23일 18세의 나이로 서천교에서 장형으로 순교하였다.
전동 순교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 때 순교한 자리이며, '호남의 사도'로 불린 복자 유항검과 윤지현, 김유산, 이우집 등이 신유박해 때 순교한 곳이다. 전동 성당은 순교터 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지금은 리모델링 중.
전동 성당은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했고, 전주성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고, 중국인 기술자들이 직접 구운 벽돌을 올려 세워졌다. 1957년 6월까지 주교좌성당이었으며, 1981년 국가 지정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아름다운 모습의 성당을 인터넷에서 따와 편집해 보았다.
전주시 완산구 한국전통문화전당 뒷편 한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전주옥 순교지 표지판.
조선시대 전주는 전라도 중심지여서 각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전주 옥에 갇혀 심문,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였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동정 부부인 유중철과 그의 동생 유문석이 교살되었고, 정해박해(1827년) 때는 240여 명이 넘는 천주교인들이 감금되어 문초를 받았다. 기해박해(1839년) 때는 순교 역사상 가장 어린 이봉금 아나스타시아가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당시 12세가 넘지않았다고 한다.
박해 시기에 옥은 고통스러운 곳이었지만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기도처였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증언하는 곳이었다.
인공으로 조성된 숲이 울창해 '숲정이'라 불렸는데, 군사훈련장이 있고 전주천이 흐르고 있어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 가족 4명이 순교하면서부터 박해 내내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은 곳이었다.
1935년에 세워진 '천주교인 순교지지'라고 새긴 기념비가 세워졌다.
십자가의 길
이곳에서 박해 때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어제 밤 저녁식사 후 호텔 옆의 전주교구청에서 찍은 사진.
전주 시내의 성지 순례를 마쳤다.
7년만에 다시 찾은 전주시. 방문 목적이 다르니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어제 늦게 오는 바람에 전주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연락조차 못했다. 일찍 왔으면 얼굴이라도 봤을텐데-----
다음에 또 전주를 올 기화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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