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여행 2일차. 5월 13일(금)
시내에 있는 최익현선생의 순국비가 모셔져있는 수선사를 찾았다.
수선사는 백제에서 이주한 법묘스님(비구니)이 창건한 절이란다.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구국 항일투쟁의 상징이었던 최익현 선생은
1906년 의병활동을 일으키다 일본군에 붙잡혀 대마도로 끌려왔는데,
신념을 끝까지 지키면서 일본이 준 음식을 끝내 먹지 않아 한 달 만에 순국하셨다고 한다.
최익현 선생의 장례가 이 곳 수선사에서 치뤄졌다고 한다.
수선사 경내에 있는 대한국인 최익현선생순국지비 (大韓國人 崔益鉉先生 殉國之碑)
이를 보러 한국 관광객들이 거의 빠짐없이 수선사를 들러간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어린 중생을 위한 돌조각들의 모습
가족묘가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가족묘를 유치하고 보존하는 것이 절의 주 수입원이라나?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걸려있는 연등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유모 도시 자연공원은 천연 화강암의 계곡으로 국정공원(국립공원)이며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아유모 도시자연공원을 만나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현수교 세이류바시
세이류바시 중간에서 만세를 불러보고
계곡에서 올려다 본 세이류바시
계곡이 1.2Km인가 된다던데, 엄청 큰 화강암 위로 물이 흐르고 있다.
시원한 물줄기가 나를 유혹한다.
아직은 물에 들어가기는 이른 계절(?)
한적한 공원 안의 모습
잔잔한 물에 투영된 모습이 아름답다.
조선통신사비는
조선시대 후기 한일간 조선통신사 친선 교류에 공로가 컸던
일본의 유학자 아메노모리호슈가 주창한 외교원칙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을 기리기 위한 비이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1912년 고종황제와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덕혜옹주는
고종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1925년 일본으로 끌려가 교육받고
쓰시마 도주의 후예인 다케유키 백작과 강제 결혼도 하게 된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현 기념비는 2001년에 새로 복원된 것이란다.
덩그러니 세워진 기념비처럼 덕혜옹주의 결혼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는데,
1962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비운의 삶이 이곳에 담겨 있다.
대마 역사 민속 자료관 입구에 있는 고려문(高麗門)
대마도 번주가 살던 '사지키바라' 성의 제 3문으로, 조선과의 선린 외교를 위한 영빈문으로 사용되었단다.
신공황후가 신라정복에서 돌아오던 길에 기사카의 이즈야마 기슭에 여덟류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는 하치만궁신사
AD 200년 신공황후의 신라정토설은 일본학자들도 틀렸다고 인정한 학설이란다.
하치만궁신사 내부의 모습 1
하치만궁신사 내부의 모습 2
하치만궁신사 내부의 모습 3
1박 2일의 대마도 여행이 끝나간다.
부산으로 갈 배를 타기 위해 이즈하라 국제 여객 터미날로 걸어가는 도중
잠시 뒤를 돌아보니 이즈하라 항이 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대마도를 찾는 관광객의 85%가 우리나라 사람이란다.
일본인 관광객이 14%정도로 대마도의 경제는 한국인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되지 않나?
대마도를 오가는 배 안의 모습은 마치 울릉도를 가는 배안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외국 여행이라기 보다는 국내 어느 섬에 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
친목회원들의 단체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꽤나 시끌시끌하다.
그래도 명색이 국제 여객선이라 소수이지만 외국인들도 타고 있는데-------
날씨 운이 좋아서 푸른 바다와 하늘을 만끽하고 왔다.
신록의 계절이라 나무와 산이 그려내는 그림 또한 일품이다.
대마도라는 섬!
부산에서 여객선으로 약 70분 거리에 위치한 섬
일본 본토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가까운 섬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라면 우리나라의 영토가 훨씬 넓어졌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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