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3-2, 3코스 완주!!

 

 3-2코스 중간부분 일자산에서 시작해 3-3코스 종착점 수서역까지의 12-13km.

집에서 출발해 일자산 캠핑장을 지나 들어선 3-2 코스 일자산 코스는 비가 온 이틀 뒤라 진흙탕길이 많아 길을 나선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신발에 묻은 흙으로 신발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바지 아랫단도 흙투성이가 되고 약간의 짜증스러운 길이었다.

 

방이동 생태공원을 지나 3-3코스는 성내천과 탄천을 따라 걷는 길이 중심이 된 코스.

평상시 차만 타고 다녀서 보지 못했던 천을 따라 걷는 길이 참 좋았다.

이런 곳에 이런 길이 있었다니? 놀라움의 연속(!?!?)  천천히 걸어야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이라고나 할까??

 

오금동을 지나며 민생고 해결을 위해 들렀던 " 내꾸미 쭈꾸미".

9000원짜리 "쭈꾸미 세트".   가격대비 띵호아!!!!  묵전, 샐러드, 쭈꾸미 볶음, 묵국수, 공기밥, 야채, 무무침 등등

특히 쭈꾸미는 볶기전 참숯으로 구웠는지 참숯의 향이 은은히 풍겨 나오는 것이 절로 막걸리 한병을 부르게 만들었다.

다른 분들도 꼭 한 번 가보시라. 후회 안 할 걸요.

 

좀 힘은 들었지만 3코스 종료지점인 수서역까지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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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근처에 있는 "목향"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신정을 고수하는 우리집은 설날은 그야말로 차분히 보낸다.

너무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해서 부모님과 하루 이틀전에 외식을 하는 것이 우리집 구정행사가 되었다.

신정은 집에서 다 같이 모여 차례도 지내고 세배도 하고, 구정은 집에서 조용히 TV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딸만 2인 나에게는 오히려 잘 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쨋든 신정에는 다 모이니까.

(내가 만일 구정을 고집한다면, 시집간 딸들은 시댁으로 가고 그야말로 썰렁 그 자체일 것이다)

 

행주산성 근처 맛집을 탐색하던 중 우연히 알고 간 목향! (블로거들이 올려놓은 글을 비교해 보며 선택한 집)

깔끔한 한정식도 좋았지만 집주변 정원이 한겨울에도 운치가 있는 것이 주인장의 정성과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겨울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찾아 쓰며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안주인의 봄에 오면 참 좋으니 꼭 한 번 오시라고 하는 말에 믿음이 간다.

봄꽃이 구석구석 만발한 "목향"의 5월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꽃피는 5월이 되면 동화속의 꽃집이 될 것 같은 느낌!!

어머니께서 당신 생신 날(5월)에 다시 한번 오자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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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총 157km) 완주에 도전!!!!!

 

 

 

얼마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서울둘레길을 탐색해 왔다. 탐색할수록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완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시간이야 풍부한 내가 아닌가?

 

봄부터 가을까지는 홍천에서 농작물과 씨름을 해야 하니, 주로 겨울철을 이용해야 하나?

 

완주를 하면 서울시에서 완주 기념 메달을 준다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믿음으로 오늘 전체 8코스 중 우리동네 근처 3-1코스에 처음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둘레길 첫날! 필요한 의식 절차(?)를 치뤄야 한다.

 

서울둘레길 안내 팜프렛과 완주를 증명할 수 있는 스탬프 찍는 카드를 얻기 위해 아차산 공원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필요물품을 얻은 뒤 광나루역으로 내려가 역사적인(?) 서울둘레길 트레킹 시작!!!!!!

 

 

 

오늘은 3-1코스 10km의 광나루역에서 고덕역으로 소요시간 약 3시간.

 

광나루역, 광진교 횡단, 광나루 한강 시민공원, 암사동 선사 주거지, 고덕산, 고덕역으로 이어지는 코스

 

중간에 암사동 선사초등학교 앞 이화 보신탕집에서 영양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식사 후 암사동 뒷길 서래마을과 서원마을을 지나갔다. 강동구에 30여년을 살았건만 이런 곳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적한 시골 풍경과도 같은 전원마을이 이 곳이 서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걸을 때는 별로 몰랐는데, 오후 4시쯤 집에 도착하니 온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새로운 도전의 첫날은 보람이었다.

 

 

 

시간나는대로 몇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완주 목표 도전!! 야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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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COEX에서 2.12-15에 하는" 내나라 여행 박람회"에 다녀왔다.

 

각 지자체별로 자기 고장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

덕분에 한 곳에서 전국의 여행지도를 손쉽게 구했다.

각 지자체의 관광지도를 잘 정리해 두고, 알차게 활용해 보겠다는 야심에 무거운 줄도 모르고 꽤 많은 팜프렛을 집어 왔다.

이럴줄 알았으면 배낭 하나 메고 갈 것을 ------. 보따리 몇 개를 들고 힘 좀 썼다.

 

봄부터 틈틈히 곳곳을 다녀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얼마나 실현될지?

 

지칠 시간에 마침 안산시립합창단과 춘천 사물놀이 팀의 공연이 있어 착석 후 눈요기도 하고, 귀도 즐겁게 하고, 피로도 풀고 일거양득(꿩 먹고 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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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야말로 별안간 에버랜드행 발차!!!!

손녀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16:00) 대화 중 별안간 야경이 좋은 곳 이야기가 나왔다.

가평 아침고요수목원과 야경과 용인 에버랜드 야경 이야기를 하다가 휠이 꽂혔나?

저녁 5시 넘어서 손녀를 앞세우고 용인으로 출발했다. 땅거미가 제법 내렸을 때에나 도착!

 

옛날 우리 두 딸 키울 때 연간 회원권 끊어 다니던 시절이 생각 나기도----. (그 때 참 많이 다녔는데)

그야말로   "아!날이여∼∼∼∼!!!!!"  변해도 엄청 변했다.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가막힌 야경!!!  우리 나라 수준이 그만큼  Up 됐다는 증거?

 

아름다운 야경에 흠뻑 취해서인지 한동안 사진 찍고 구경하느라 추위를 못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니 손마디 끝부터 살살 저려오는 듯한 산속의 추위를 실감하게 된다.

 

20:00에 관람 종료라는 말이 좀 안타깝기는 했지만, 손녀의 인내력의 한계와 20:00는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는 듯----.

추위에 떠는 손녀를 유모차에 태워 바삐 에버랜드를 벗어났다.

 

젊은 청춘 남녀들이여!

추운 겨울 저녁에 에버랜드로 데이트를 가라!!!!

아름다운 야경이 그대들의 마음을 녹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추위가 두사람간의 물리적 공간을 좁혀줄 것이다! 

 

나도 30-40년만 젊었어도, 아니 20년만 젊었어도 우리 집사람과 멋진 데이트를 즐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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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오나시스(1906~1975)의 후회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가요? 돈이 행복의 조건일가요?

  케네디 미대통령의 아내였던 재크린과 결혼하여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의 생애를 봅니다.

 

  억만장자 오나시스는 화려한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던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다가 드디어 칼라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8년도 못되어 칼라스가 주부로서 너무 모자라고 권태가 나서 이혼한 후 재클린에게 다시 장가 갔습니다.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과 함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재클린과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 "내가 실수를 했다"하며 자기 가슴을 치며 고민을 하다  '파혼할 길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니 쉽게 이혼도 못했습니다. 재클린은 한 달에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는데 화가 난 오나시스는 혈압이 올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도 얼마 못살고 죽었습니다. 그때 오나시스의 나이 59세였습니다.

 

 끝까지 이혼에 합의하지 않던 재클린은 엄청난 오나시스의 유산을 거의 차지했다고 합니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하며 오나시스는 죽었습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였던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한 남자를 행복하게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했습니다.

 

  우리는 오나시스의 삶을 반면교사로 우리의 행복을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묵묵히 가정 살림 잘하고, 따뜻이 가족 돌볼 줄 아는 알뜰, 살뜰한 우리네 주부가 보화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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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에 얽힌 이야기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채 먼 곳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맞춰 삼종기도(Angelus:하루 세 번 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에 바치는 기도)를 바치고 있다.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성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저녁종>'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 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50년대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 프랑을 지원했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로 뛰었고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됐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이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성당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 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고 그 바구니에는 감자씨와 밭일 도구를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었다는 속설이 있다. 그 설에 따르면, 이 시대에는 대부분의 농부들이 배고픔을 견디며 감자 농사로 춘궁기를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시대였는데…….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영양부족으로 생명을 잃는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었다고.

 

그럼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전시회를 앞두고 이 그림을 본 밀레의 절친한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고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 바구니로 덧칠하여 전시회에 출품했다.

 

그 얘기가 더 발전해서 현대 스페인의 쉬르레알리즘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이 속설에 등장한다. 밀레의 <만종>을 보면 누구라도 신성한 노동 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끼게 되는게 상례인데,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꼬마 달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고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들러붙어 있었던지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게까지 되었다.

 

그는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자루 대신에 어린아이의 관을 꿰뚫어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고, 수십 년 후, 이러한 그의 투시력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고…….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 그 감자자루가 초벌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이 입증되었다는 설이 생겨났다는데 그 진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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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버지의 재산 상속

 

-S시 지방지에 게재된 실화에서-

 

S시에 거주하는 한 아버지가 4남매를 잘 키워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시집 장가를 다 보내고 한 시름 놓자 그만 중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하루는 자식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모두 불러 모았다

 

“내가 너희들을 키우고,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고 사업을 하느라 7억 정도 빚을 좀 졌다. 알다시피 내 건강이 안 좋고 이제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좀 갚아다오. 이 종이에 얼마씩 갚겠다고 좀 적어라.”

 

아버지 재산이 좀 있는 줄 알았던 자식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 아무 말이 없는데……. 형제 중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둘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원을 적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머지 자식들은 경매가격을 매기듯 큰 아들이 2천만원, 세째 아들이 1천5백만원, 딸이 1천만원을 적었다

 

수개월 후, 문병 한번 없고, 그 흔한 휴대폰으로 안부전화 한번 없는 자식들을 다시 모두 불러 모았는데, 이번에는 며느리 사위는 오지 않고 4남매만 왔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이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싸움질하고 형제간 반목할까봐 전 재산을 정리하고 공증까지 마쳤다. 지난번에 너희가 적어준 액수의 5배를 지금 준다.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내가 줄 재산상속은 끝이다. 장남 1억원, 둘째 2억5천만원, 세째 7천5백만원, 딸 5천만원 이다.”

상속을 적게 받은 자식들의 얼굴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나머지는 내 치료비와 너희 엄마와 앞으로 살아갈 우리 내외 생활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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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던 아들

 

소록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K신부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신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 아닌 듯 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신부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모두 열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 을 벗어두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 발 두 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해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올라와 함께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 주면 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셋째, 넷째,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다 내다버린 아이,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 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를 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 버린 한포기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그분을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신부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 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신부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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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만두집 사랑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만두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가게에 나타나는 겁니다.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 두 노인들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 부부가 무엇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한 사랑.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놔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가게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엷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겁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싸운 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답니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 가셨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뭔가 생각할 거리를 우리에게 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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