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올 봄에는 산수유 나무에 꽃이 제법 많이 피었다.

산수유 묘목을 심은 지 5년이 더 된 것 같은데------

올해는 산수유 열매를 수확해 볼까?

작년에는 열매가 얼마 달리지 않아 새들 먹으라고 내버려두었었는데-----


시간 날 때 간간히 찍은 산수유의 모습을 남겨본다.

 

 

 


며칠 전 밤새 눈이 내려 산수유꽃을 덮기도 했다.

 

 








10월 25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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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9일(월)


봄꽃을 시샘하는 눈이 밤새 내렸나 보다.

색색의 봄꽃망울의 색깔도 곱지만

흰백의 눈꽃도

누구보다도 아름답노라고 뽐내고자

밤새 흰눈이 그렇게 내렸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흰 눈이 밤새 내렸다.

4월에 웬 눈?

농촌에 사는 사람으로 시기적으로 별로 반갑지 않는 눈이다.

한참 새싹이 돋아나고 있을 때 오는 눈은 어린 싹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엉성한 농부에게는 4월의 눈도 아름답게만 보이니 어쩐다?


돌단풍꽃 위의 설화

 


자신보다 훨씬 큰 눈꽃을 이고 있는 산수유꽃

 


분홍빛 진달래꽃 위의 얼음과자(?)

 


연약한 노란 개나리가 눈꽃을 이겨낼지?

 


해국의 파란 싹 위에 흰꽃이 피었네요.

 


주목나무 밑의 할미꽃은 자신보다 큰 나무 덕분에 눈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나 봅니다.

 


자두 나뭇가지의 꽃눈에 하얀 눈이 먼저 피었네요.

 


보리수 새싹 위에도 설화가 피고

 


배나무 꽃눈 위에도 하얀 눈꽃이 피었습니다.

 


힘차게 오르던 두릅나무 새싹도 흰꽃을 피웠구요.

 


블루베리 가지에도 눈이 쌓여있습니다.

 


라일락(수수 꽃다리)의 새싹에도 흰눈이 쌓여있네요.

 


원추리 새싹들이 흰눈에 폭 싸여있구요.

 


마늘밭과 파밭에도 흰눈이 포근하게 덮혔네요.

 


금송과 소나무와 영산홍에도 하얀 눈꽃이 피었습니다.

 


산에도 봄눈이 하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화단의 회양목과 영산홍 위에도 흰 눈이 살포시 내려 앉아 있습니다.

 


명자나무 가지에도 눈은 쌓이고

 


길가의 벚꽃나무에도 흰눈이 피었습니다.

(홍천은 아직 진짜 벚꽃이 필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눈 덮힌 우리 집의 모습



데크에서 내려다 본 보습




4월 중순이 다 되 가는데 내린 흰 눈!

농부들의 마음을 바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백설의 세상을 선보이기도 한다.

흰눈이 내리면 뭔가 설레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직 내가 젊다(?)는 의미일까?

눈이 내린 아침이면 핸드폰을 들고 나가 이곳저곳의 흔적을 담으려는 나는 젊은이(?) ㅋㅋㅋ


금년 봄의 날씨는 참 요란맞다는 느낌이 든다.

3월에 낮기온이 22도까지 올라가 여름 날씨를 선보이는 듯 하더니

4월에 영하 4도까지 내려가는 꽃샘 추위와 함께 흰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


어제 어느 집 목련꽃이 채 펴보기도 전에 꽃망울이 얼어 누렇게 변한 모습도 보았다.

변덕이 심한 날씨로 식물들도 자신의 몸을 조절하기 힘들 듯 하다.

장농 한 귀퉁이로 몰려나 있던 두꺼운 겨울 잠바를 다시 찾아 입어야 하니-----


요사이 지주 오는 비로 봄가뭄을 해소한 것은 좋은데

날씨가 고르지 않아 봄농사 준비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망설이게 된다.


이제는 봄꽃이 마음놓고 어깨를 펼 수 있는 따듯한 봄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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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화)


서울에 일이 있어 머무는 중에 하루 틈이 나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을 찾았다.

집 앞에서 370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하차

강북 삼성병원 정문에 설치된 한양도성 스탬프를 찍고 언덕길로 올랐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시절의 모습하고는 완연히 다르게 변한 도로가 약간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삼성병원 건너편엔 돈의문박물관 마을이 들어섰다.

아마도 관광객들의 한옥 체험을 위한 마을을 조성하고 있는 것 같다.

돈의문박물관 마을이 완공되면 외국인들에게는 꽤나 인기있는 지역이 될 듯 하다.

 


1422년부터 1915년까지 현 위치에 있던 돈의문(敦義門) - 우리는 흔히 서대문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돈의문이 있던 자리에 표식만이 남아있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태종 13년(1413)에 만들어진 서전문(西箭門)이 서대문의 기능을 대신하였다고.

세종 4년(1422)에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새로운 돈의문을 세웠는데 현재 돈의문 터가 그 위치이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新門)으로도 불렸으며, 현재의 신문로라는 지명도 이에서 유래되었다고.

1915년 일제는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여 건축자재로 매각하였다고 한다.

조선의 근대화란 미명하에 우리의 문화재를 파괴하고 팔아먹은 일본인들!

자신의 나라 근대화 작업 중에도 이런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으로 올라가는 송월길에도 좌우의 상가가 철거되고 새로 단장을 해 놓았다.

왼쪽엔 아파트 단지가 들어왔고, 오른쪽은 도로공원으로 가꾸어져 있다.

 


서울시교육청 건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송월길을 계속 오르니 오른쪽으로 한양도성이 나타난다.

 


행촌 성곽마을 잔디밭의 민들레가 오가는 이에게 봄 인사를 한다.

 


근래에 보수 축성된 한양도성 뒤로 아파트가 내려다 보인다.

 


한양도성 안쪽으로 마을사람들이 다듬어 놓은 화단이 도성과 함께 이어져 있다.

 


인왕산(仁王山) 입구에 산등성을 따라 올라가는 한양도성이 보인다.

인왕산은 한양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본래 서산(西山)이라고 했다고 한다.

세종임금 때 조선 왕조를 수호하기 위해 인왕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달리 부르는 말이란다.

배불숭유의 정책을 편 조선이지만 불교의 힘을 빌려 왕조를 수호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잘 포장된 도성길을 따라 올라가니 산수유꽃이 나를 반긴다.

 


인왕산 정상을 향해 굽이쳐 올라가는 한양도성

봄을 맞은 노란 개나리꽃이 한양도성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인왕산 정상을 향해 이어지는 한양도성

숨이 차 잠시 쉬며 뒤돌아 본 한양도성이 서울시내의 모습과 어우러져 굽이쳐 내려간다.

 


한양도성과 돌계단과 소나무 3총사가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낸다.

 


날씨가 흐려 선명하지는 못하지만 청와대 쪽 시내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수줍은 시골 처녀의 붉은 보조개를 연상케 하는 진달래가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큰 바위 사이로 한양도성길은 이어지고

 


해발 338m인 인왕산은 큰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정상에 가까울수록 험준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자연 암반이 성벽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큰 바위들과 어우러져 끊어질 듯 이어진 성벽은 한양도성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저 건너 산봉우리에는 서울을 지키는 군사기지가 눈에 보인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내의 모습

날씨가 좋으면 정말 멋진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텐데-----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기차바위의 모습

 


한양도성 인왕, 백악 구간 성벽 보수공사 안내판

이 높은 산에서 무거운 돌과 씨름하며 한양도성을 복구하는 이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땀 흘린 이들 덕분에 복구된 한양도성이 데크 길과 나란히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조선시대 축성된 한양도성이 오랜 세월의 흐름을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옛부터 있던 성과 오늘날 쌓은 성이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창의문 쪽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옆으로 군인들이 쳐놓은 철책선이 나란히 간다.



옛 성곽과 근래에 보수한 성곽의 차이

옛날에 쌓은 성은 돌 하나하나를 틈에 맞게 조각해 끼워맞췄다면

근래에 쌓은 성은 직사각형의 돌을 단순히 위로 얹어놓은 듯 한 모습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둘 중 어느 것이 더 튼튼하게 버티고 있을까?



무릎에서 잠시 쉬어가라는 신호가 온다.

오늘 인왕산 코스가 약 4km이지만 완전한 등산 코스(?)로 꽤나 가파르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쉬며 내가 내려온 길을 올려다 보니 숲 사이의 한양도성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큰 길가에 가까워지니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보인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큰 바위에 암각되어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길가에는 윤동주 문학관도 자리를 잡고 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창의문이 보인다.



한양도성의 화단에는 봄을 알리는 제비꽃이 등산객의 피로를 씻어주려는 듯 미소를 보낸다.



창의문 앞 길가에 1·21 사태로 순직한 최규식 총경 동상이 목련꽃과 함께 서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을 당시

종로경찰서장이던 최규식 총경은 북한군과 교전 중 창의문에서 순직하였다.

이 사건 이후 백악과 인왕산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는데,

1994년에는 한양도성의 인왕산 구간이, 2007년에는 백악 구간이 각각 다시 개방되었다.





돈의문터에서 창의문까지의 인왕산 구간은 4km



인왕산 구간은 난이도 상급코스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내리느라 꽤 많은 땀을 흘렸다.

조그만 배낭 하나 메고 오르내리기도 이리 힘이 드는데

그 옛날 중장비도 없던 시절에 이곳에 한양도성을 건설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백성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곳일 것이다.

바위산과 어우러진 한양도성은 현재를 사는 나에게는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보인다.


만약에 서울에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난다면

조선시대 쌓은 성은 큰 피해가 없겠지만, 근래에 쌓은 성은 지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양도성을 유심히 살펴보면 옛날에 오랜 세월 작업은 했겠지만

돌 하나하나를 짜맞쳐 끼워놓은 듯한 모습이다. 웬만한 지진에는 끄떡없을 듯.


한양도성은 평균 높이 약 5~8m로 전체 길이가 약 18.6km란다.

또한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기능을 수행하였단다.    
역사적으로나 자연과의 조화로 볼 때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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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금)


오늘 흥인지문에서 시작한 한양도성길

내친 김에 남산 백범 광장에서 시작하는 숭례문 구간까지 완주하기로 했다.

원 계획은 숭례문까지였으나 집에 가는 교통수단을 고려하여 시내 거리를 좀 더 걷기로 했다.


백범광장부터 이어지는 신축 성곽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인들에 의한 조선신궁 건설로 파괴되었던 성곽이 복구된 것이다.

이어지는 성곽 뒤로 남산의 서울타워가 보인다.

 


근래 다시 축성된 한양도성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시내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뻗어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도성과 남산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

공원의 나무들이 싹을 돋고 꽃을 피우면 정말 장관일 것 같다.

 


남산을 내려와 큰길을 만나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남산둘레길 안내도

 


도동 삼거리 남산 입구에는 남산공원을 알리는 입간판이 있다.

 


도심의 길에도 한양도성은 남대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한양도성이 남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형상이다.

 


남산 육교에서 바라다 보이는 서울역 앞 고가도로 - 근래에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드디어 만난 국보 1호 남대문(숭례문)


1395년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 완공하였고, 1448년에 개축하였단다.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화재로만 남았다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으나 2008년 2월 화재로 목조인 1층 약 10%, 2층 문루 약 90%가 소실되었다.

2013년 5월 복구되면서 숭례문 서쪽 16m, 동쪽 53m의 성벽을 연결하였다.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세로로 내려 쓴 이유는

숭례문을 마주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방책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관악산의 화기는 오랜 세월 동안 지켜왔지만 인재에 의한 화재는 막지를 못했다.

 


서울역 쪽에서 보면 남대문은 도로 한 가운데 위치한 것 처럼 보인다.

남대문 화재 사건 전에는 실제로 남대문을 돌아 차들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

 


대한·서울상공회의소 부근에 성벽 일부가 담장처럼 남아 있다.

1907년 한양도성의 본격적인 철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단다.

남대문 서쪽에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 옆을 지나는 세종대로 7길에는

성벽 일부가 재현되었으나,  건설의 후유증으로 이미 한양도성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듯 한 모습이다.

 


퍼시픽 타워 앞에는 최근 옛 성돌의 흔적 위에 새로 몇 단을 쌓아 올렸다.

하단부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축성돌, 상단부는 성을 재현하며 쌓은 현대(?)의 돌

돌의 색깔에서 역사의 흐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배재공원 입구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이 있전 자리로

1984년 배재학당이 강동구로 이전 한 후 일부가 시민공원으로 공개되었다고 한다.

 


덕수궁 돌담길 옆에 있는 이환권 작가의 "장독대"라는 작품

3대 가족의 모습을 나타낸 작품으로 실제 작가의 친구 가족을 모델로 만들어 졌단다.

작가는 눈덮인 장독대 위 크고 작은 항아리의 모습을 보면서 겨울나기를 하는 가족을 떠올렸고

항아리처럼 모여있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정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다고 한다.

또 각각의 조각은 위 아래로 눌린 형태를 띄는데 이런한 외곡된 형상의 조각을 통해

관객들에게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전달하고자 했단다.

 


정동극장 앞 길.  '이 길 따라 한 걸음씩 너와 함께'라는 글의 의미는 무엇일까?

 


1886년 미국 감리교 여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튼이 창설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은 1887년 왕후가 지어준 것이란다.

독립만세 운동의 선구자이신 유관순의 모교이기도 하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역사와 문화의 거리인 정동길에 자리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988년 개원 이래 천주교 신자들의 피정과 각종 모임 등을 위한 도심 속의 영성 쉼터로 열려져 있다.

하느님을 우러러보며 프란치스코 성인은 오늘은 무슨 기도를 하고 계실까?

 


이곳은 조선시대 어서각터(御書閣址)이다.

최규서는 영조 즉위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영조에게서 일사부정(一絲扶鼎)이라는 어필을 하사 받았다.

어필을 봉안하기 위해 최규서(1650-1735)가 자기 집 안에 지은 건물이  어서각이다.


프란치스코회관 입구에 서 있는 작은 소녀상

 


한양도성길을 잃을만 하면 바닥에 설치된 동판이 갈 길을 알려준다.





남산 백범광장에서 돈의문터까지의 숭례문 구간은 1.8km


오늘 하루에 전체 6개 구간으로 나눠진 한양도성길을 세 구간 걸었다.

두 구간 정도 계획하고 집을 나섰는데 한 구간을 초과 달성(???)


40년 이상을 산 서울 땅!

막상 서울길을 두 발로 다니며 둘러보니 내가 서울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한양도성을 반도 돌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서울둘레길 완주 후 이어서 도전한 한양도성길!

서울에 대한 나의 무지함을 깨우쳐 주는 것 같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서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준 것 같다.


항상 우리 곁에 있던 한양도성!

발과 눈으로 직접 접하니 한양도성의 옛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듯 하다.


전부터 보아왔던 한양 지도가 이제야 눈에 좀 들어오는 것 같다.

나머지 구간을 다 돌면 한양지도가 더욱 친숙해질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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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금)


한양도성길 흥인지문 구간에 이어 계속 남산(목멱산) 구간으로 Go!!!!!


장충체육관옆 한양도성길이 성 안쪽 길과 성 바깥 쪽길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안쪽 길을 선택해서 올라갔다.

 


성 안쪽길을 따라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성밖으로 시내가 보인다.

 


소나무가 오랜세월 굽이굽이 자란 모습으로 성곽을 지키고 있다.

 


성 안쪽 길은 신라호텔과 성곽과의 경계선을 따라간다. 신라호텔 안의 팔각정이 울타리 너머로 보인다.

 


한참을 오르니 성 바깥 쪽 길로 나갈 수 있는 좁은 문이 보인다.

조선시대 축성시부터 있던 문인지, 근래에 성곽 정비사업 때 만들어 놓은 문인지 --------

쪽문을 통해 성 바깥 쪽 길로 나갔다.

 


성 바깥으로 나와 보니 성이 제법 높음을 알 수 있다.


장충체육관 뒷길의 평지부의 석성은 대부분 세종 때 새로 쌓은 것이라는데,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했으며. 상대적으로 큰 돌을 아랫부분에 놓아 균형을 유지했단다.

이 구간의 성벽은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쌓았단다.

 


옛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돌과 근래에 얹어진 돌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두 돌은 형님과 아우로서 서로 상견례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아우 돌은 형님 돌로부터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지금도 전해듣고 있을 것이다.

 


성이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안쪽 길로 들어가 성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데크로 잘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다보니 한남대로가 내려다 보인다.

 


남산 공원으로 들어서기 전 횡단보도에서 바라다 본 국립극장

 


남산(목멱산) 공원에 들어서니 한양도성이 다시 나를 반긴다.

 


데크로 잘 만들어진 계단길은 언제나 산을 오르는 나를 꽤나 힘들게 한다.

잠시 쉬며 뒤를 돌아보니 아래로 남산순환도로가 보인다.

 


중장비도 없는 그 옛날에 이 높은 산까지 저 돌들을 어찌 날라와 축성을 했을까?

수많은 백성들의 오랜 세월 피와 땀으로 쌓아올리지 않았을까?


태조 시기의 성벽은 축성된 지 이미 600여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초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 성벽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특히 남산의 동쪽 능선을 따라 조성된 나무계단길 옆에 태조 때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다.

 


가파른 데크 계단을 다 오르니 국립극장과 신라호텔 등 시내의 모습이 시원하게 보인다.

오늘 미세먼지가 좀 약했더라면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을텐데-----

 


숲 사이로 남산의 서울타워가 보인다.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쉼터도 잘 꾸며져 있다.

 


남산 위의 성곽 길을 따라 서울타워쪽으로 올라간다.

 


주차장과 편의점이 있는 곳에서 바라다 본 남산 성의 모습

성 안 쪽에서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성 밖에서 보면 꽤나 높게 느껴진다.

그래야 외부에서 처들어 오는 적들을 성 안쪽에서 어려움 없이 방어할 수 있었겠지.

 


남산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봄을 맞아 튜울립 싹이 돋아나고 있다.

 


드디어 남산의 정상에 올랐다.

팔각정 앞 광장에는 민속놀이 체험장이 꾸며지고 있었다.

 


남산 팔각정 자리는 조선시대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자리이다.

조선 태조는 남산을 목멱대왕으로 삼고 이 산에서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국가 제사만 지낼 수 있게 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대 1925년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인왕산 기슭에 옮겨졌다.

제1공화국 때에 원 국사당 자리에 탑골공원 팔각정과 같은 모양의 정자를 짓고,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정’이라고 하였는데, 4·19 혁명 이후 팔각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팔각정 바로 뒤편에 이어져 있는 성곽의 모습

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자리에 있었건만, 전에 왔을 때는 관심 부족으로 이런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목멱산 봉수대터(木覓山烽燧臺址)는 남산 정상에 있던 목멱산(木覓山) 봉수대터이다.

남산봉수대는 서울에 있다 하여 일명 경봉수(京烽燧)라고 하며, 조선시대 전국 각지의 봉수를 매일 받아 병조(兵曹)에 보고하는 중앙 봉수소였다.


세종 5년(1423년)에 설치되어 갑오경장(1895년) 때까지 500년간존속하였으나,

지금의 봉수대터는 1993년 추정하여 복원한 것이란다. 서울시 기념물 제 14호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만난 성곽 위에 세월의 흔적인 이끼가 길게 덮혀있다.



봉수대 아래 케이블카  입구에는

연인들이 자신들의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사랑의 자물쇠가 많이 걸려있다.

저 많은 자물쇠의 주인공들이 사랑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을까?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린 서울의 하늘로 인해 북한산 자락은 전혀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하늘이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졌는지?  최근 몇년간 부쩍 심해진 느낌이다.



한참을 내려오다 올려다 본 성곽과 돌계단길



남산 서쪽 봉우리는 누에머리를 닮았다하여 예부터 잠두봉이라 불렀단다.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에서 바라다 본 서울 시내의 모습



이어지는 돌계단을 내려오자니 가금은 좀 쉬어야 한다.

잠시 쉬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N서울타워가 숲 뒤로 보인다.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돌에 새겨진 안의사의 애국지심이 서려있는 글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 -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志士仁人 殺身成仁(지사인인 살신성인) -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내몸을 바쳐 대업을 이룬다.

合成酸敗 萬古定理(합성산패 만고정리) - 합하면 이루고 흩어지면 패한다. 이는 만고의 정한 이치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

이익을 보거든 의리에 맞는 지 생각하고, 위태함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安重根)[1879~1910]1910326일 사형에 처해질 때까지 여순감옥에서 휘호한 유묵(遺墨) 200여 점 가운데 하나인 보물 제569-6안중근의사 유묵-

見利思義 見危授命은 폭 30.6, 길이 140.8의 족자로, 한지에 8자의 글자가 세로로 휘호되어 있다.

유묵의 말미에는 “19103월에 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글씨와 함께 장인이 찍혀 있다.



남산의 백범광장 주변에는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물이 많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신궁이 있던 곳으로,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체한 것이다.


광장 일대의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을 지을 때 철거되거나 흙 속에 묻혔다가 최근 다시 쌓았단다.


백범 김구 선생 동상과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




장충체육관에서 남산 백범광장까지의 남산(목멱산) 구간은 4.2km


서울에 살면서 참 드물게 가보는 곳이 남산인 것 같다.  내 기억으로 남산에 오른 것이 서너번?

자동차나 케이블카를 이용해 올랐던 남산!

난생 처음 두 다리로 남산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며 종주를 한 것 같다.


남산에 한양 땅을 지키기 위한 성터가 많이 있었다는 사실(史實)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한양도성길을 걷지 않았다면 내가 그렇게 오래 살았던 서울의 남산을 진면목을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남산의 정기를 뿌리채 봅기 위해 

우리선조들의 문화유산인 국사당과 성터까지 파헤치고 신궁까지 설치했던 일본.

백범 김구 선생이 온 세상을 향해 '이 땅이 대한민국 땅임을 선포하노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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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3일(금)


서울둘레길 157km를 완주한 후 가 보겠다고 다짐한 한양도성길

서울둘레길이 현재의 서울 외곽쪽으로 한 바퀴를 도는 코스라면

한양도성길은 조선시대 사대문과 성곽을 따라 작게 도는 코스라 할 것이다.


집에서 370번 버스를 타고 동대문 버스정거장에서 하차

흥인지문 관리소의 안내로 서울한양도성 스탬프 투어 시작!!!!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다시 지은 것이란다.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단다.





서울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동대문이 가장 취약하였단다.

아래 사진처럼 동대문 바깥쪽으로 옹성을 하나 더 쌓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1907년 좌우 성벽이 헐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단다.

 


흥인지문 공원 안 인도에는 서울한양도성길을 알리는 안내문양이 돌에 새겨져 있다.

 


한양도성 순성길을 따라가다 만난 청계천의 모습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안에도 옛 성곽을 재현시킨 성곽길이 산책길로 사용되고 있는 듯 하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조선 후기 이곳에는 훈련도감의 별영인 하도감과 화약 제조 관서인 염초청이 있었단다.

1925년 일제는 일본 왕세자 결혼 기념으로 경성운동장을 지었는데, 성벽을 이용하여 관중석을 만들었단다. 경성운동장은 해방 후 서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가 서울 88올림픽 이후 다시 동대문운동장이 되었다.

근현대 한국 스포츠의 중심지였던 이 운동장이 헐린 것은 2007년이다.

당시 철거 과정에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성벽의 일부와 이간수문(남산에서 발원한 물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두 칸짜리 수문), 치성(雉城 ·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 하도감으로 추정되는 건물 유구 등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2007년 철거된 동대문운동장 자리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우주선의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있다.

 


한양도성의 동남쪽에 있는 광희문(光熙門)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리웠단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원 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현 위치에 중건하였단다.

 


광희문은 시체가 나가던 시구문이다.

일반 백성들도 출입하기를 꺼리는 문이었으나 왕의 신분으로 이 문을 이용한 왕이 있었단다.

인조는 병자호란 시 청나라 군사가 예상보다 빨리 도성에 접근하자 광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한편 문 밖은 노제 장소였기 때문에 무당집들이 많아 신당리(神堂里)로 불렸었는데,

갑오개혁 이후 신당리(新堂里)로 바뀌었단다.

 


광희문 옆으로 이어진 성곽의 모습 (성 밖에서 바라다 본 모습)

성 축성시 사용했던 돌들과 개축과정에서 사용한 돌들의 색깔이 완연하게 구분이 된다.

 


성 안쪽에서 본 성곽의 모습

 


광희문 성벽을 따라 장충동 주택가로 들어서면 한양도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930년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이 일대에 문화주택 단지를 조성하면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했으며, 해방 후 1960~70년대에 신축된 주택들도 성벽을 파괴하였단다.

현재 성돌은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

 


한양도성길을 따라가다 만난 신당동 성당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예수님과 마리아님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신다.

 


길 건너에 한양도성 흥인지문 구간 종착점인 장충체육관이 보인다.

 


서울시에서 제작해 나눠주는 한양도성 안내도

18.627km의 서울 한양도성 전체를 걸으면 약 3,600칼로리가 소모된다고 한다.


 


흥인지문에서 장충체육관까지의 흥인지문 구간은 1.8km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다가 중간에 빈 날을 이용해 찾아간 한양도성길

주로 차를 타고 지나쳤던 곳을 찬찬히 걸으면서 서울시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다.

다 아는 듯한 서울이지만, 막상 걷다보니 서울에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양도성길 안내도에 4개의 스탬프를 찍으면 완주 기념배지를 준다고 한다.

완주 기념배지를 받으려면 끝까지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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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13일 아차산공원에서 시작한 서울둘레길!

3년이 지난 어제(2018.3.14) 드디어 157km를 완주했다.

3년여 동안 서울둘레길을 돌며 28개의 스탬프를 찍은  스탬프북을 들고

7호선 도봉산역에 있는 서울 창포원에 있는 서울둘레길 안내센터를 찾았다.


스탬프북을 제출하고 서류 2가지를 작성하니 서울둘레길 완주 인증서를 발부해 준다.

안내센터 직원이 서울둘레길 완주 인증서 받은 기념 사진까지 찍어주고

 


블로그 기록을 보니 완주하는데 3년이 더 걸렸다.

2015년, 2016년, 2018년 이른 봄철에 주로 서울둘레길과 가까이 한 것 같다.

기록을 보니 2017년에는 서울둘레길 접근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서울둘레길 완주 인증서 21,124호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완주 인증서를 받고나니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

중간에 한때는 포기하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끝까지 완주한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다.

 


완주 이수증과 함께 받은 뺏지

 


인증서를 받기 위해 비오는 날 찾은 서울창포원의 모습

글쎄, 내 평생 이곳을 다시 찾을 기회가 생길까?

보이는 서울창포원 건물 1층에 서울둘레길 안내센터가 있다.

 


서울 둘레를 돌며 28개의 스탬프를 찍은 스탬프북

 


몇년동안 들고 다녔던 서울둘레길 안내 지도

접혔던 부분이 저절로 찢어질 정도로 많이 보고 다녔다.




그동안 3코스부터 순서대로 서울둘레길을 찾아 다녔는데

이제는 마음에 부담없이 내가 가고 싶은 지역의 서울둘레길을 가련다.


각 코스마다 장단점이 있고 특징도 있지만, 접근성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지역적으로 가까운 2, 3코스가 주로 나와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완주 목표는 제주 올레길 425km!

전체 21코스 중 14코스까지 접근 했으니 앞으로 두 번 정도 제주를 찾으면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까지 완주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


봄부터 가을까지는 주로 홍천에서 머물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있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가 제주올레길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제주올레길 다음으로는 동해안의 해파랑길 770km

우리나라 최장의 트레일 거리 동해 해파랑길

남북이 통일이 되어 부산에서 두만강변까지 해파랑길이 이어진다면 총 1,400km란다.

글쎄 내 생애에 1,400km를 다 걸을 수있는 기회가 올지???????


겨우 서울둘레길 157km 완주해 놓고 야무진 꿈을 꾸어본다.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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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수)

 

서울둘레길 완주를 위한 마지막 날

오늘 하루 2코스를 마치면 전 코스를 마치게 된다.

 

집 앞에서 370번 버스를 타고 군자역에서 7호선 승차, 상봉역에서 경의 중앙선을 타고 양원역에서 하차

양원역 2번 출구를 나와  중랑캠핑숲 입구로 들어섰다.

 

중랑캠핑숲 입구의 모습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중랑캠핑숲 모습

 

 

 

망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망우공원묘지에서 영면을 하고 계신 유명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비

 

 

 

용마산과 아차산 지킴이로 수십 년간 산속 쓰레기를 주워온 최고학 옹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쌓았다는 국민강녕탑

오랜 세월 돌을 모아 탑을 쌓아가는 최고학 옹의 집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망우리'란 명칭은

태조 이성계가 무학 대사와 정도전의 도움으로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이후 이성계는 죽어서 묻힐 건원릉의 묘 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다가 한 고개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모든 근심을 덜었다."라고 말해서,

이성계가 머문 고개를 '망우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망우리 공원 사잇길 중랑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서울 시내의 모습

 

 

 

서울둘레길에서 갈라져 나가는 용마산자락길

 

 

 

용마산 깔딱고개 입구 산등성에 설치되어 있는 서울둘레길 스탬프 보관 우체통

이곳에서 마지막 28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마지막 스탬프를 찍으며 환호소리라도 내고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속으로만 화이팅을 외쳤다.

 

 

 

57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깔딱고개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깔딱고개에 도전을 했다.

 

 

 

깔딱고개를 오르는 도중에 지친 몸에 기운을 불러넣어주는 시원한 한강의 모습이 보인다.

암사대교와 강일동, 미사지구 아파트들이 멀리 보인다.

 

 

 

용마산 5보루의 모습. 멀리 롯데 타워가 보인다.

 

 

 

아차산과 함께 하는 한강이 하늘의 구름과 어우러져 평화롭게 보인다.

 

 

 

아차산 4보루의 모습

 

 

 

아차산 3보루의 모습

 

 

 

구리시, 미사 신도시가 한강의 좌우를 차지하고 있다.

 

 

 

아차산 3보루의 돌탑

 

 

 

아차산 5보루의 돌탑과 소나무 사이로 롯데타워가 보인다.

 

 

 

아차산 1보루에서 보이는 풍경

 

 

 

이제는 아차산 공원쪽으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고구려정 앞에서 힘차게 화이팅을 외치고

 

 

 

오늘의 목표지점인 아차산공원관리사무소

 

 

 

해발 285m 아차산 입구의 조형물

 

 

 

광나루역 쪽 길은 여러번 다녔던 길 - 3년 전 서울둘레길 시작할 때도 걸었고

산에 오르기 전 깜빡 잊고 빵을 안 사갖고 올라가는 바람에 점심도 거르고

출출해서 영화사쪽으로 내려와 두부집으로 갔다.

김치두부전골에 막걸리 한 병을 하산주로 맛있게 먹었다.

 

 

 

 

오늘 드디어 서울둘레길을 모두 마쳤다.

 

오늘 갔던 2 코스는 7.25km.   

서울둘레길 총 길이 157km 중 오늘까지 152.7km를 마쳤다. 97.3% 목표 달성

 

1-3 수락 불암산 우회 코스 4.3km를 우회하지 않고 바로 내려와 숫자상으로 100%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서울둘레길 100% 완주 목표 달성으로 간주

스탬프 총 28개를 다 찍었으니 서류상으로는 100% 완주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2015년 2월에 시작해서 3년여에 걸쳐 서울둘레길을 완주했다.

기간은 오래 걸렸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도전해서 마무리를 지었다는 데 만족한다.

아쉬운 점은 아내가 지난달 24일 8-3, 4코스에서 다리를 다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점이다.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으나 아내의 응원 덕분에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울둘레길을 천천히 걸어 돌면서 서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스쳐갔던 많은 풍경을 눈과 마음으로 찬찬히 담을 수 있었다.

둘레길을 따라 가다보니 난생 처음 가 본 곳도 많고 본 것도 많다.

서울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서울엔 고층 빌딩과 아파트만이 스카이 라인을 형성할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서울의 가장자리를 관심을 갖고 돌아보게 된 좋은 기회였다.

서울둘레길을 개척하고 만들고 유지 관리하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다음에 기회를 내서 한양도성길 6개 코스(총 15km)도 완주를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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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화)


지인이 부친상을 당해 강릉으로 조문을 가야할 입장

다음 주에 홍천으로 내려오려는 계획을 당겨 오늘 아내와 함께 홍천으로 내려왔다.

아내는 홍천집에서 비워있던 집을 살피기로 하고

나는 한계령을 넘어 강릉으로 향했다.


한계령을 오를수록 하얀 눈이 쌓인 모습이 차의 속도를 느리게 하더니 결국 차를 멈추게 한다.

비상등을 켜놓고 밖으로 나가 눈이 덮인 한계령 고개를 올려다 보며 홀로 신나게 설경에 취해본다.


한계령을 오르며 본 설경

 


한계령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한계령휴게소의 설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계령휴게소에서 바라다 본 눈 덮힌 설악산의 모습

 

 

 

 


나뭇가지에 핀 눈꽃

 

 

 

 

 


한계령에서 동해쪽으로 내려오다 올려다 본 계곡의 설경

 


저멀리 한계령휴게소가 보인다.

 

 


바위산에도 눈이 내려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건너편 산 꼭대기는 구름에 살짝 감추어져 있다.




오늘 생각지도 않은 한계령의 설경을 보았다.

강릉길이 멀어 조문을 갈까 말까 망설였었는데----

착한 마음으로 길을 떠난 덕분에 3월의 설경을 맛볼 수 있었다.


오가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소비한 시간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설경이 나를 동심의 세계로 잠시 안내했다.


세상 일은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경우는 없다는 진실을 새삼 느꼈다.

좀 손해보는 듯한 행동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제법 있는 듯 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베풀고 살라는 하느님의 계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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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화)

 

어제 하루 쉰 덕분에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나섰다.

지하철 5, 7, 4호선을 갈아타고 당고개역에 12시 좀 지나 도착했다.

편의점에서 점심 때 먹을 빵을 하나 사고 서울둘레길 1-2 코스로 향했다.

 

 

 

서울둘레길 1-2코스 (수락  불암산 코스) 시작점에서 스탬프를 찍고

 

 

 

뒤를 돌아보니 당고개역이 있는 상계동이 내려다 보인다.

 

 

 

불암산의 바위 모습과 아직 얼음이 뒤덮힌 계곡의 모습

 

 

 

남성의 성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남근석이란 이름이 붙은 바위

사진을 찍은 각도가 잘못되었는지 영 못생긴 거시기처럼 보인다.

남근석은 토템신앙의 일종으로 잉태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남근석을 살피다 길을 잘못들어 찾아간 정암사의 대웅전

200m가 넘는 가파른 아스팔트 포장길을 헉헉대며 올라가서 본 정암사

마침 스님이 계셔서 여쭤보니 둘레길은 남근석있는 데까지 다시 내려가야 한단다.

 

 

 

정안사 마당에서 바라다 본 서울 시내의 모습이 일품이다.

헉헉대고 올라 온 것이 헛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둘레길을 찾아 Go! 

바위산을 바람막이 병풍으로 이용하는 자연이 만들어 준 배드민턴장

 

 

 

공룡바위의 모습

불암산의 화강암층은 중생대 쥬라기에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공룡바위는 공룡시대에 탄생한 불암산의 역사를 말하려는 듯 하다.

 

 

 

서울둘레길 1-2코스는 불암산 건강 산책로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여성의 성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여근석이란 이름이 붙은 바위

옛날에는 아이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단다.

이 바위에 돌멩이 하나라도 끼어있으면 마을 남정네들이 바람을 피워 과부가 생긴다는 속설이 있었고,

동네 처녀들이 모두 바람이 나 동네 미혼모가 늘어난다는 속설도 있어

바위를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단다.

바위 둘레에 가시나무를 겹겹이 심어 동네 처녀들의 접근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여근석도 일종의 토템신앙의 일종으로 잉태와 다산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숲 사이로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주말농장터가 보인다.

 

 

 

산 속에 이런 데크길을 만들어 놓으려면 꽤나 많은 자본과 인력이 필요할텐데-----

둘레길을 개척하고 다듬은 이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갖어본다.

 

 

 

1-2코스 반 이상을 지나온 것 같다. 지나는 이들을 편의를 위한 시설이 모여있다.

왼쪽부터 서울둘레길 안내도, 이정표 2개, 동행길과 백세길 안내도

 

 

 

태능 선수촌과 육군사관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오늘의 목표지점 화랑대역이 가까워지면서 넓은 길이 나타난다.

잠시 쉬며 무릎 보호대를 걷어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간다.

 

 

 

반사경을 이용한 셀카

 

 

 

큰 길에서 불암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공릉산 백세문

 

 

 

공릉산 백세문에서 한참을 내려와 화랑대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다 바라다 본 화랑로

 

 

 

드디어 오늘의 목표지점인 1-2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작점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는 좌우의 스탬프가 서로 다르다. 한 곳에서 스탬프 2개를 찍는다.

 

 

 

스탬프를 찍고 공릉동근린공원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지도를 살펴보았다.

오늘 좀 무리를 해서라도 2-1코스의 양원역까지 가면 다음에 와서 2코스 전체를 돌기가 수월할 것 같다.

현재 시각 15;40.  그래 기운을 내서 양원역까지 가자! (오늘의 목표지점을 연장하기로)

 

 

 

양원역으로 가는 서울둘레길 2-1코스.  묵동천변을 따라 한동안 가게 된다.

 

 

 

묵동천에서 만난 겨울철새 오리의 모습

오늘이 경칩이니 저 오리도 이제는 멀리 떠날 준비를 하겠지?

 

 

 

묵동천을 따라가다 보니 신내동의 서울의료원이 보인다.

 

 

 

신내역 옆을 지나간다. 동네 큰 길을 따라가는 길은 둘레꾼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다.

 

 

 

LH공사에서 추진하는 서울 양원지구 택지 개발 사업 현장을 지난다.

길 양옆으로 엄청나게 크게 자라던 메타세콰이어들이 뿌리만 남은채 잘려져있다.

모자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 나무였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개발도 좋지만 도시 설계시 큰 나무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도로 좌우의 한 쪽이라도 살려놓았다면 멋진 주택단지가 될 수 있었을텐데-------

 

 

 

16:40경에 오늘의 최종 목표인 양원역에 도착

서울에 이런 지역도 있었나? 역이름도 생소하기만 하다.

 

 

 

 

양원역에서 경의 중앙선 전철, 7호선, 5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둘레길 1-2코스 7.1km를 완주하고 2-1코스 일부까지 돌파!

꽤 많은 거리를 다녀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좀 무겁게 느껴진다.

 

오늘 갔던 1-2 코스는 7.1km.   2-1코스 일부 약 5.35km 합 12.451km를 걸었다.

서울둘레길 총 길이 157km 중 오늘까지 145.45km를 마쳤다. 92.6% 목표 달성

 

이제 하루만 더 서울둘레길에 도전하면 전 코스 완주 목표 달성이다.

2016년 봄 이후 2년을 쉬다가 요사이에 다시 달려들어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목표 달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뿌듯한 마음과 덕분에 심신이 튼튼해지고 있다는 믿음이

나를 산으로 자꾸 유도해 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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