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황사때문에 미세먼지 농도가 엄청 높은 날이다. 가능한 한 외출을 삼가해야 하는 날.
실손보험관계로 강남구 선릉역 근처의 보험사에서 14:00에 담당자를 만날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주변의 선정릉을 돌아보았다. 서울에 살면서 선정릉 안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공기가 맑지 않은데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변의 빌딩에서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강남구 삼성동의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선정릉은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1494년, 성종이 승하하면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에 안장되었고 1530년에는 계비 정현황후가 승하하면서 같은 곳에 왕릉으로 안장되어 지금의 선릉이 만들어졌고, 이후 1544년에는 중종이 승하하면서 바로 한 울타리에 있는 왕릉인 정릉에 안장되어서 선정릉 및 삼릉이 형성되었다.
먼저 중종의 정릉을 돌아보았다. 정릉으로 가는 길에 보기 힘든 미선나무가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릉에서 선릉으로 가는 길에 봄의 전령인 진달래와 개나리가 우리를 맞는다. 도심 한가운데 멋진 송림이 있다는 것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송림으로 둘러싸인 성종의 계비정현황후의 능
성종의 능으로 가는 길에 잠시 개나리 앞에서 봄의 포즈를 취해본다. 성종 능을 뒤로 하고 능원 밖으로 나왔다.
선릉역 주변에 볼일이 있어 우연히 방문하게 된 선정릉.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멀리했던 것 같다.
날씨가 좋았다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능의 모습이 훨씬 멋졌을텐데------.
서울의 명소 중 아직도 가보지 않은 곳이 꽤나 있는 것 같다. 틈날때마다 한번씩 둘러보아야지.
2023년 2월 17일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에서 역방향으로 시작한 KOREA TRAIL 서해랑길!
2년여 기간 30회 41박 67일의 여행 끝에 2025년 2월 20일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아내와 함께 한 긴 여정이었다.
봄날 새싹이 돋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여름철 35도가 넘는 뜨거운 날에 진땀을 흘리며 걷기도 했고, 비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을의 정취를 흠뻑 누리기도 했고, 한겨울에 휘날리는 눈보라를 뚫고 전진하기도 했다.
며칠전 받은 서해랑길 완보 기념품! 이 기념품으로 나의 버킷리스트가 또 하나 완성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며 지난 2년여 기간을 회상해보았다.
2023년 2월 17일 - 서해랑길 103코스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
2023년 3월 18일 - 서해랑길 96코스 (인천광역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2023년 4월 27일 - 서해랑길 91코스 (안산시 구봉도 낙조 전망대)
2023년 5월 25일 - 서해랑길 88코스 (화성시 백미리 힐링마당 보리밭)
2023년 7월 27일 - 서해랑길 79코스 (서산시 대신리 농로의 35도가 넘는 폭염으로 축 늘어진 어깨)
2023년 10월 15일 - 서해랑길 72코스 (태안군 이원면 바닷가 카페에서 누리는 모처럼의 호강)
2023년 12월 10일 - 서해랑길 56코스 (서천군 장항 스카이 워크)
2024년 1월 16일 - 서해랑길 54코스 (군산 내항 부잔교)
2024년 2월 27일 - 서해랑길 47코스 (부안 소노벨 변산)
2024년 4월 7일 - 서해랑길 42코스 (고창 선운산 도솔암 약수터)
2024년 9월 24일 - 서해랑길 38코스 (영광군 간척지 풍력발전 단지)
2024년 10월 31일 - 서해랑길 27코스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의 저녁노을)
2024년 11월 2일 - 서해랑길 24코스 (무안군 해제면 황토밭)
2025년 1월 7일 - 서해랑길 17코스 (영암군 삼호읍 전라남도 농업박물관)
2025년 2월 18일 - 서해랑길 5코스 (진도대교)
2025년 2월 20일 - 서해랑길 1코스 (해남군 땅끝탑)
한국관광공사로부터 받은 서해랑길 완보 인증서
집에서 멀어질수록 교통편과 잠자리가 고민거리. 여행 출발 전 숙소를 검색하고 사전 예약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서해랑길 주변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꽤 먼 거리를 오가기도 했다. 먹고 자는데 신경을 많이 썼고, 경비도 많이 지출된 것 같다.
서해랑길 30회의 여행동안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 840만원 정도 경비가 지출되었다.
아내와 함께 한 41박 67일의 긴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느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여주 파사성.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여러 사람이 소개를 해 놓았다. 여주에 몇 차례 다녀왔어도 처음 들어본 것 같은 파사성
헬스장에 다녀와서 앉아있다가 별안간 아내와 함께 파사성으로 Go!!!!
파사성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제법 급하다.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른다. 얼마 전 내린 습설로 나뭇가지가 부러진 소나무의 모습이 안타깝다. 오가는 이들을 위해 길을 덮친 소나무를 나름대로 정리해 놓았다.
몇 차례 쉬어가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 드디어 산성에 닿았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약 800m) 준비운동 없이 별안간 올라오기에는 좀 벅찬 것 같다.
여주 파사성은 남한강 동쪽에 있는 파사산(해발 235m) 꼭대기에 돌로 쌓은 성이다. 이곳은 한강의 수상교통과 중부 내륙의 육상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포대교 주변의 한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성의 둘레는 1,800m이고 최대 높이는 6.5m로 규모가 큰 편이란다.
파사성은 신라 파사왕 23년(102년)에 쌓았다고 전해지지만, 당시 이 지역은 백제 땅이었으므로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발굴 조사 결과에 의하면 파사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파사성 남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선다. 파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길게 이어져 있다. 파사성은 외부에서 본 겉모습보다는 성안의 모습이 더 감탄을 자아낸다. 파사산 정상으로 치닫는 성의 모습과 남한강과 이포대교의 모습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오는 보기 드문 명장면이다.
파사산 정상 부분에도 습설의 피해로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나간 안타까운 모습이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파사산 정상(해발 235m)에 다다른다.
정상에서 둘러본 파노라마 사진. 파사성과 이포교가 있는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7년경에 성벽을 크게 복원하고 보수하였단다. 파사성 복원사업은 지금도 진행형으로 곳곳에 공사 흔적이 남아있다. 성을 돌아 남문으로 내려간다.
곳곳에서 잘려나간 소나무가지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 정도 크기로 자라려면 꽤 긴 세월을 보냈을텐데------.
파사산을 내려와 한강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한강 둑방에 오르니 한강의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1990년대 후반에 다녀왔던 여주 노포 맛집. 우연히 최근 TV 연예프로그램에서 방영된 화면을 보고 옛기억을 되살렸다. 어쩌다 한번씩 생각났던 노포집. 상호가 기억나지 않아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곳이다. 떡만두국으로 옛 입맛을 되살려보았다. 허름한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더 정이 가는 것 같다.
점저 식사 후 여주 시내 한강변의 영월공원을 찾았다.
여주 삼층 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본래 창리와 하리의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영월루는 원래 18세기말 지어진 군청의 정문으로, 1925년에 군청을 옮기면서 지금 자리에 누각으로 다시 세운 것이다. 영월루에 오르니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월루 아래 한강변에 커다란 괴암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바위 위에는 마암(馬巌)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글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서 여주 지명의 유래가 되는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이곳에서 솟아났다 하여 마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 여주는 황려라 불리웠다. 여주의 지명은 골내근현-황효-황려-여흥-여주로 변천되었는데, 황려 지명은 이 마암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여주 출신 대문호인 이규보의 한 시중에 '두 마리의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 하여, 이 때문에 고을 이름이 황려라네'라고 적은 내용이 있어 그 역사성이 매우 높은 유적이다.
마암 앞에서 바라본 여주대교의 모습
마암으로 오가는 길은 짧지만(약 70m) 돌계단과 바위를 조심스럽게 지나야 한다.
영월공원 안에는 한국전쟁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그리이스군 참전 기념비와 6.25 참전 용사들의 참전비와 공적비가 영월루를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여주에 세종대왕릉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훈민정음 무늬 바닥재가 눈길을 끈다.
30여년 전 먹었던 만두국을 찾아 나선 추억의 여주 나들이!
파사성이란 낯선 곳도 가 보고, 시내 한강변의 영월공원도 둘러보았다. 집에서 한시간 이내 도착할 수 있는 여주를 참 오래간만에 찾았다. 2018년 홍천에 살 때 정원을 장식할 토우인형을 구하기 위해 왔던 곳이다. 7년만의 방문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신륵사도 한번 둘러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해랑길 여행 마지막 날이다. 2년 전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에서 시작한 서해랑길 여행의 끝이 보인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해남 화산면 관동방조제 갑문에서 서해랑길 2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방조제 위에 그물을 널어 말리고 있다.
이차선도로를 따라가던 서해랑길은 사포 마을을 지나 농로로 나아간다.
대지마을길을 지나 다시 농로를 따라간다.
바닷가를 지나 두모마을로 들어선다.
철새들이 놀고 있는 현산천변의 방조제를 따라간다.
엄청난 규모의 태양광발전시설을 따라간다.
다시 또 만난 도로와 농로. 며칠 내내 만나는 비슷비슷한 모습의 농로와 마을길이 머리 속에서 엉켜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해남에 들어서 처음 만난 땅끝염전. 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이라 한가한 모습이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지난 서해랑길은 우근리 마을로 들어선다.
미학배수장을 지나 방조제로 나아간다.
이차선도로를 지나 미학마을로 들어선다.
미학마을 어느집 담벼락의 문귀가 시선을 끈다.
"힘들면 쉬어가고 지치면 앉았다 가시게.
천천히 삶을 즐기며 살아보자구요.
걸어가든 뛰어가든 종착지는 하나
뭘 그리 뛰어가는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쉼의 미학을 전해주는 것 같다.
곳곳에 벽화와 좋은 글귀가 있는 행복한 미학마을
송지면사무소 앞에서 서해랑길 2코스를 마감하고 계속 1코스로 나아간다.
송지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서해랑길 마지막 코스인 1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마지막이다! 힘차게 앞으로 Go!!!!
소죽리 마을회관과 거리 모습
산길과 농로를 따라가다보니 앞으로 두륜산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상수원보호구역인 송지 저수지의 대나무 울타리를 따라간다.
송중마을을 지나 땅끝해안로로 들어서니 땅끝 황토마을과 황토나라 테마촌이 보인다.
해안산책로(생태탐방로)를 따라가다보면 우측으로 바다의 전복양식장이 줄지어 나타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군초소가 바다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꼼지락 캠핑 생태탐방로는 송호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해남의 가장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백사장의 길이가 1.5㎞로 모래가 깨끗하고 바닷물이 맑다. 수심이 1∼2m로 깊지 않고 해저의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간조 시의 갯벌에서는 고동·소라 등의 해산물 채취도 할 수 있다. 찬 바람이 부는 오늘은 해수욕장에 오가는 이가 없어 썰렁하다.
서해랑길의 마지막 목적지점인 땅끝탑을 향해 해안가를 따라간다. 이제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다엔 전복, 다시마, 김 등의 양식장이 이어져 있다.
저멀리 땅끝전망대가 보인다. KOREA TRAIL 해남 땅끝을 알리는 표식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방문자들의 소원을 적은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낡은 데크길을 고치는 이들의 모습에 감사하다.
드디어 목표지점인 땅끝탑이 보인다.
해안산책길의 고사리와 유채화가 길손을 맞으며 힘을 북돋워준다.
산책로에서 내려다 본 땅끝탑!
'여기는 땅끝. 한반도의 시작' 땅끝탑 앞에 땅끝점이 있다.
<땅끝 유래 안내문>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32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이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땅끝은 한반도의 시발점이자 끝이다. 대륙과 해양의 접점에서 다양한 문화가 만나 오늘의 땅끝을 이루고 있다.
강화도에서 서해랑길에 첫걸음을 디딘 뒤 약 2년이 지났다. 중간중간 힘들고 지루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코스를 이탈해 편한 길을 택하기도 했다. 눈비와 바람을 맞으며 이곳 땅끝에 왔다.
"와우! 야호!! 만세!!!"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땅끝점을 기준으로 서해와 남해바다를 나눈단다.
땅끝탑에서 땅끝마을로 가는 '땅끝 꿈길랜드'는 2025년 1월 최근에 조성된 무장애 걷기길로 계단이나 경사지 없이 누구나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다. 남해바다를 조망하며 걷는 데크길을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땅끝바다로 뻗어나간 41m 길이의 스카이워크. 오늘은 바람이 세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양식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남해바다가 시원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땅끝마을에 다다르니 동백꽃이 활짝피어 우리를 맞는다. 서해랑길을 따라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환한 웃음을 전한다.
20213년 2월 17일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에서 북녘땅을 바라보며 시작한 서해랑길 여행!
2년 여만에 해남 땅끝마을에서 대장정의 마지막을 맞았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서해랑길 103코스 1,630여km를 함께 한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늘 하나 없는 간척지의 끝도 없는 농로를 걷기도 했고, 한여름 뜨거운 지열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비를 맞으며 오가는 이 없는 길을 묵묵히 걷기도 했고, 강한 바람에 옷깃을 여밀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겨울철 강한 눈보라와 매서운 바닷바람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많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길가에 핀 예쁜 꽃이 던지는 미소에 마음을 달래기도 했고, 쉼터에서의 짧은 휴식에 몸을 추스리기도 했다.
멋진 풍광을 보며 가볍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나아간 적도 많았다. 각 지방의 자연 풍경과 생활모습을 보며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했다.
일기예보와 같이 기온이 뚝 떨어졌다. 찬 기운이 옷깃을 파고든다. 단단히 옷을 챙겨입고 길을 나섰다.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성에서 서해랑길 6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진도 용장성(龍藏城) 은 몽골군의 침입을 받아 항쟁하던 고려가원종 때 강화조약을 맺고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반대한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군이 원종의 6촌인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내려와 항거하였는데, 이때 삼별초군이대몽항쟁(1270~1271)의 근거지로 삼은 성이다. 고려항몽충혼비와 배중손의 동상과 사당이 세워져있다.
선황산 임도를 따라가는 서해랑길. 바람이 차고 세다.
선황산 임도는 삼별초 호국역사 탐방길로 운영되고 있다.
산에서 내려온 서해랑길은 농로를 지나 고군 연동마을로 들어선다.
우리가 바닷가에 다다르니 새들이 놀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방파제를 건너니 언덕 위에 벽파정이 우리를 맞는다.
벽파정은 진도 동북쪽, 바다가 보이는 낮은 언덕 바위 위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로 이충무공 전첩비 앞에 있다. 이곳은 1207년(고려 희종 3) 창건하여 1465년(조선 세조 11) 중건되었다가 폐허가 된 것을 2016년 재건한 정자로 이곳을 찾는 관리와 사신을 영송하고 위로하던 장소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이곳을 방문한 많은 문인과 관료들이 시구를 남긴 명소이기도 하다.
언덕 정상 부분에 명량대첩을 기념한 이충무공 전첩비가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전첩비 뒤 숲을 지나 명량대첩로로 연결된다. 대로변에 대단위 태양광발전시설이 자리하고있다.
진도일주도로를 따라가는 서해랑길 .
바다 건너 저멀리 진도타워가 보인다.
진도갯벌 습지보호구역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둔전방조제
진도갯벌 습지보호구역은 2002년에 진도갯벌의 수려한 주변경관과 생물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인근에 겨울철새의 도래지가 있으며, 청정환경을 유지하고 있어 이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갯벌의 훼손방지 및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지정되었단다. 습지보호구역 공원에 오르면 바다양식장을 비롯한 주변의 모습을 한눈으로 볼 수 있다.
명랑대첩로에서 망금산 정상의 진도타워를 향해 산으로 올라가는 서해랑길
진도대교 근처 망금산 정상에 위치한 진도타워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진도군 관광의 랜드 마크이다.
타워의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며 몸을 녹이고 주변 경관을 감상한 후 녹진국민관광단지로 내려와 서해랑길 6코스를 마감한다.
진도개가 지키고 있는 진도대교를 넘어 해남군으로 넘어간다.
해남우수영관광지를 지나 해안산책길을 따라간다.
해안산책로를 나와 학동2저수지를 지난다. 논 사이로 곧게 뻗은 농로를 지나 임도로 들어선다.
학동마을로 들어선다.
주인이 떠나 쓰러져가는 폐가의 앞마당에도 마늘이 자라고 있다.
대파밭 사이로 굽이쳐 돌아가는 농로를 따라간다.
2월중순임에도 이미 비닐 멀칭까지 끝낸 밭에는 새싹이 자라고 있다. 이 정도 대규모이면 영농조합이 아니고는 경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도에 사용했던 비닐이 한 귀퉁이에서 바람에 날리고 있다.
논과 밭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수로가 곧게 뻗어있다. 농부의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는 봄동이 잘 자라고 있다.
공룡대로 밑을 통과한 서해랑길 5코스는 원문마을에서 끝난다.
해남군 원문마을에서 쏠비치진도로 돌아왔다.
평년보다 낮은 기온과 강풍이 종일 우리를 괴롭힌 하루였다. 바닷바람이 만만치 않다.
진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숙소에서 언 몸을 녹인 후 리조트 내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멀리 바닷가로 왔는데 회 한번은 먹어줘야지?
쏠비치 진도에서 아침을 맞았다. 준비해 간 재료로 아침식사를 하고 국립남도국악원를 찾아갔다. 여귀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남도국악원은 2004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외진 곳에 있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활용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국악원이 바라보이는 아리랑 마을 관광지에서 서해랑길 8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상만리 마을 돌담에 선인장이 자라고 있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은 것 같다.
임도로 올라선 서해랑길은 보덕산을 넘어 진도대로와 만난다.
여귀산 돌탑길에 전해오는 전설.
여귀산을 중심으로 죽림쪽에 남신, 탑리쪽에 여신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지배욕이 많은 남신이 여신을 지배하기 위해 일년에 한번씩 힘과 지혜를 겨루어 지는신이 이긴 신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여신이 계속 이기자 남신은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로 하여금 여신의 탑을 파괴시켜 버렸는데, 힘과 지혜를 쓰지 못하게 된 여신은남신의 지배를 받게 되었단다.
정성으로 돌을 쌓아 돌탑을 세우는 것은 전설 속의 두 신의 화해로 고을 사람들의 안녕과 번영을 위함이란다.
진도대로를 벗어나 임도를 따라가던 서해랑길은 배추가 자라고 있는 농경지를 지나 다시 진도대로와 합류한다.
바닷가 죽림어촌체험 휴양마을에서 잠시 해안선을 따라가던 서해랑길은 진도대로를 가로질러 봉호산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산을 넘어가니 금년도 농사 준비를 마친 농경지와 태양광발전시설이 보인다.
봉화산 자락에서 송정지로 향하는 길에는 배추, 대파, 양파 등이 자라고 있다. 남쪽지방이라 겨울에도 채소류가 밭에서 추위를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겨울새들이 송정지에서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송정지를 벗어난 서해랑길은 만길리로 들어선다.
만길재에서 오솔길로 접어든 서해랑길은 삼별초 궁녀둠벙으로 향한다.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했던 승화후(承化侯) 온(溫)은 지금의 의신면 침계리에 있는 왕무덤재에서 몽골군에게 붙잡혀 논수골에서 죽임을 당했다. 피난 중이던 여기(女妓)와 급창(及唱) 등 삼별초의 궁녀와 부하들은 창포리에서 만길리로 넘어가는 만길재를 넘다 몽골군에게 붙잡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언덕을 따라 내려가 이 삼별초 궁녀둠벙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뒤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 둠벙에서 여인네의 울음소리가 슬피 들려오고,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밤에는 이곳을 지나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길게 이어진 농로를 지나 돈지 백구테마센터에 다다른다.
'돌아온 백구'는 1993년 3월에 진도의 한 백구가 대전 지역 애견가에 팔려 갔는데, 같은 해 10월, 7개월 만에 산 넘고 물 건너 300km 넘는 거리에 있는 진도의 원주인에게로 돌아온 이야기로 유명해진 개 이야기이다. 2014년에 마을사람들이 '돌아온 백구'를 알리기 위해백구공원 을 조성하고 백구테마센터를 세웠단다.
의신 읍내를 거쳐 옥대리와 중리를 지난 서해랑길은 옥대천변을 지나 중리지로 향한다.
덕신산 자락으로 들어서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변에 표고버섯 재배장이 이어져 나타난다.
임도를 벗어나 운림공원과 운림예술촌이 있는사천리 마을로 들어선다.
서해랑길 8코스는 첨찰산 쌍계사 일주문 앞에서 끝이 난다.
이어서 운림산방에서 서해랑길 7코스를 역방향으로 이어간다.
첨찰산(485m) 아래 자리한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시대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이 기거한 곳으로 남종화의 산실로 일컬어지고 있다.
사천일제 저수지를 지나 진도아리랑비에서 첨찰산 등산로로 들어선다.
임도를 따라가던 서해랑길은 대나무숲을 지나 첨찰산 능선으로 오른다.
서해랑길은 아니지만 가까이에 있는 진도기상레이더 관측소에 올라 진도 동쪽 해안 다도해의 멋진 풍광을 감상하였다.
관측소에서 내려오는 길(해발 450m 정도) 에 기온이 낮아 아직도 잔설이 쌓여있다. 긴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고성마을에 다다른다. 산속 마을의 오리가족이 우리들을 영접하러 나왔다.
고성마을을 지나 농로로 이어지는 서해랑길
용장마을을 지나 용장성 입구에서 서해랑길 7코스를 마감한다.
오늘은 오후가 되면서 점점 날씨가 차가워진다. 옷깃을 여밀고 모자를 푹 눌러 쓰게 된다.
서해랑길 8, 7코스 긴 거리를 마치고 숙소인 쏠비치 진도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 전복갈비탕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따끈한 국물 덕분에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서해랑길 마지막 여행(30차 여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2023년 2월에 서해랑길 여행을 처음 시작한 지 2년만이다. 14:20경에 진도 서망항에 도착하여 역방향으로 서해랑길 9코스를 시작한다.
서망항을 둘러보고 언덕길을 오르니 진도대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나아가는 내내 바다가 이어져 펼쳐진다. 파란 하늘이 아쉽지만 나름대로 시원한 바다 풍경이다.
바닷가에 위치한 진도 남도진성은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남도포 만호부 진의 외곽을 둘러서 쌓은 성곽이다. 이곳 남도포에 파견된 무관 종4품 만호 6분의 만호비가 모셔져 있다. 만호비는 조선 후기 수군 만호의 선정비로 만호들의 공적을 기렸다.
성곽 앞 작은 시냇물을 이용하여 자연 해자의 역할을 하게 하였으며, 이 시냇물을 건너기 위한 홍교인 단운교(單雲橋)와 쌍운교(雙運橋)가 남문 앞쪽에 위치해 있다.
남도진성에서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바다를 끼고 돌아간다.
청둥산 자락으로 올라서는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에 버려진 건축폐기물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한 사람의 버려진 양심이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진도대로변 바다가 조망되는 곳에 도로공원이 설치되어있다. 돌에 시를 적어놓은 것은 이곳저곳에서 많이 보았으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이 참 특이했다.
국립진도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앞으로 나아간다.
진도대로에서 오솔길로 접어든 서해랑길은 진도의 대표 농산물인 대파밭을 지나 남선마을로 이어진다.
마을길과 농로를 지나 다시 진도대로와 합쳐는 서해랑길
해남윤씨 시조 고산 윤선도는60세(1646,인조24)때 진도에 유배되었는데 진도에 잠시 머물면서 간척사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산 윤선도 사당과 1649년경 축조된 윤고산둑(방조제)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사당 안에는 윤선도의 '오우가'와 '어부사시사' 시비가 세워져있다.
해안가를 지난 서해랑길은 산으로 올라선다.
농경지를 빠져나온 서해랑길은 나절로미술관 앞을 지난다.
임회면 상만리 여귀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나절로 미술관은 한국화가 이상은씨가 폐교된 (구)상만초교를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이란다. 나절로는 "스스로 흥에 겨워 즐거움"이란 뜻의 전라도 사투리란다. 늦은 시간이라 사진만 찍고 통과 (입장료 10,000원)
'아리랑 마을'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귀성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서해랑길 9코스를 마감한다. 종점 뒤로 국립남도국악원이 보인다.
서해랑길 완주 목표 달성을 위해 1월초에 다녀간 후 한달보름만에 다시 찾은 진도!
5박 6일의 여행기간 내내 좋은 날씨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9코스를 마감하고 쏠비치 진도로 Go!!
이곳에서 3연박을 하며 진도의 서해랑길을 즐길 계획이다.
아내와 함께 하는 이번 여행이 '서해랑길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뜻깊은 여행이 되기를 기대한다.
오전에 칠갑산 얼음분수 축제장과 장곡사를 돌아보고 칠갑산 장승고원 옆 식당에서 청국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눈 덮인 장독대가 이 집의 장맛을 대변하는 것 같다. 식사 후 식당 옆에 위치한 장승공원을 둘러보았다.
칠갑산 장승공원 중심부에 높이 11.5m의 칠갑산 대장군과 칠갑산 여장군이 있고, 주위에 전국의 장승 300여개가 재현되어 있다. 이 곳은 1999년 5월 ‘칠갑산 장승축제’를 개최하면서 조성된 테마공원이란다
장승공원을 둘러보고 오늘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천장호수로 향했다. 숲 사이로 칠갑산 천장호수를 기웃거리며 출렁다리로 가는 길에는 '콩밭매는 아낙네'를 비롯한 재미있는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천장호수에 다다르니 천장저수지와 출렁다리에 대한 안내가 있다.
청양의 대표 농산물인 고추와 구기자 모형 교각의 강렬한 색깔이 시선을 압도한다.
천장호에는 용과 호랑이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단다.
출렁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천장호 둘레길을 돌아 보았다.
그늘 진 곳에는 오전에 내린 눈이 쌓여있다.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이 둘레길에서 오가는 이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듯 하다.
흐린 날씨에 눈이 내려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보인다. 출렁다리 교각의 붉은 색만이 이 사진이 흑백사진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 하다.
천장호수변의 데크로 만들어진 둘레길은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힐링길을 제공할 것이다.
둘레길을 돌아나오다 보면 소원바위가 나타난다.
이 바위는 예로부터 정성을 다해 어루만지며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로 시집보낸 딸이 5년 동안 아이가 없자 친정어머니가 이 바위에서 7백일 동안 정성들여 기도를 한 결과 칠갑산 수호신이 감탄하여 딸이 결혼 7년째 되는 해에 바위를 떼어내 아기를 잉태하도록 해주어 이 아이가 자라 훗날 거란족으로부터 고려를 구하고 용호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지역 목면에 거주하는 할머니가 아들이 44살 넘도록 아기를 얻지 못하자 매일같이 이 바위에 찾아와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어 마침내 결혼 7년만에 아기를 잉태하여 2013. 10. 29에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생하였다고 한다.
또한 소원바위 아래 천장호는 여성의 자궁형상으로 임신과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는 어느 풍수사의 이야기도 있어 소원을 성취하는 명소로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단다.
아내가 소원을 비는 글을 정성껏 적어 소원성취함에 넣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소원바위 주변의 둘레길에는 김소월과 이 지역 출신 시인들의 청양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새싹 돋는 봄이나 단풍이 드는 가을철 날씨 좋은 날 다시 한번 찾아와 천장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 멋진 산책길이 될 것 같다.
오늘 소원바위 앞에서 계단을 올라가다가 눈에 미끄러 넘어졌다. 다행히 다친 데 없었다. (아내가 소원을 빌은 덕분에???)넘어지면서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놓쳤는데 바위 모서리에 부딛혀 액정 화면에 상처가 났다. 구입한지 오래되어 요사이 배터리 기능이 약해져서 교체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새 핸드폰을 구입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