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촌파출소 앞에서 시작되는 남파랑길 52코스는 율촌 하나로 마트 앞을 지나 율촌읍내 길을 따라간다. 오늘이 장날이라 길이 복잡하다. (율촌 장날은 1, 6일)
읍내를 벗어난 남파랑길은 율촌천 옆 농로를 따라간다.
조화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물 빠진 갯벌이 펼쳐져 보인다.
조화리 농로를 빠져나온 남파랑길은 여순로 고가 밑을 통과하여 신풍리 해안가로 나아간다.
철길 지하 통로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니 여수공항이 눈에 들어온다.
여수공항은 1971년 활주로와 계류장이 완공되면서 개장되었다. 여러 차례 증개축을 통해 2005년 11월에 현재의 여객청사를 개관하였다. 여수시청에서 약 21㎞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여수공항은 여수시는 물론 순천, 광양지역의 주민과 주변 공업지역 근로자 그리고 남해안 지역을 찾는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2023년에 4,484편의 항공기가 운항되었으며, 599,144명의 승객이 이곳을 다녀갔다. 하루 평균 12편 이상의 항공기가 1,640여명의 승객을 실어나른 곳으로 지방공항으로는 제법 이용이 많은 편이다.
봄을 맞은 덕양리 들판에는 새로 심은 모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덕양시장을 지나 소라초등학교 맞은 편의 남파랑길 52코스 종점(53코스 시작점)에서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남파랑길 52코스의 상당 부분이 여수의 농로를 따라가는 것 같다. 덕분에 논에서 갸냘픈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모를 실컷 보았다. 저 모가 잘 자라서 가을에 벼가 알차게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남파랑길 답사를 위해 어제(월요일) 오후 1:30경에 출발하여 6:30 경에 여수에 도착하였다. 여수 시내 퇴근 시간과 맞물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였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여수 원룸 아파트에서 일주일간 머무를 예정이다.
여수에서 여행 2일 차 아침을 맞았다. 준비해간 빵과 야채로 아침식사를 하고, 남파랑길 51코스 시작점인 광양버스터미널로 갔다. 이곳에서 일주일간의 남파랑길 답사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2021년 3월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은 옛 광양 역사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된 현대미술 공간이다.
신덕로를 따라가는 남파랑길은 신덕교에서 광양서천과 만난다.
신덕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닐하우스를 지나 월평마을회관으로 향한다.
모내기철에 좁은 농로를 지나기가 농민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는지 걱정이 된다. 얼마 전 심은 작은 모가 논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해광로에 자리하고 있는 조형물. 이곳이 광양읍 세풍리임을 알려주고 있다.
신촌마을의 아름다운 벽화.
햇볕이 따가운 날 모내기를 하느라 수고하시는 농부님들! 수고하신다는 인사 말씀을 전하고 촬영 허가를 받아 한컷!
농촌 마을에 세풍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폐허로 변하고 있다.
저 멀리 현대제철 순천공장이 보인다.
농경지와 바다 사이에서 물을 교통정리하는 수문도 세풍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제 할 일을 잃지 않을까?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난 뒤 약 100년 후 이곳에 이주해 온 주민들이 신성리성 전투에서 많은 왜군이 죽어 그 왜귀가 밤이면 자주 출몰하여 몹시 불안해서 이곳에 사당을 짓고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 뒤부터는 안락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1690년(숙종 16년)에 충무사(忠武祠)를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왔으나 일제강점기인 1944년 가을 일본인들이 이를 불태웠다. 광복 이후 1947년 현 위치에 사당을 새로 건립하였다. 후에 공의 군관 송희립 장군과 정운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같이 봉안하고 봄, 가을로 제향을 모시고 있단다.
충무사에 모셔져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
충무사 앞을 지난 남파랑길은 순천왜성으로 향한다.
순천왜성(順天倭城)은 정유재란(1597年) 당시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선봉장 우키다 히데이와 도도 다카토라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으로 1만 4천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여 조·명연합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남해안 26 왜성 중 유일하게 이 곳만 남아 있다. 1999년에 전라남도 기념물 17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왜성 안 전주에 남파랑길을 알리는 표식이 6개나 붙어있다.
천수기단(天守基壇)은 성의 가장 높은 망루인 천수가 세워졌던 단이다. 천수는 성을 대표하는 권위와 상징의 건물로 오층망해루(五層望海樓)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수기단은 오랜 세월 동안에 석축이 흐트러지고 일부가 무너져 2007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수기단에 올라서니 사방이 탁트여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천왜성 입구의 해자 자리에 연꽃이 피어있다.
신성교 다리 조형물 뒤로 현재제철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율촌산단 방향으로 향한다.
용진천변을 지나는 남파랑길 51코스는 순천시 해룡면 호두리를 지나 율촌파출소 앞에서 끝맺음을 한다.
남파랑길 답사 8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5월 20일(월)부터 27일(월)까지 일주일 동안 여수구간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다행히 일기예보 상으로는 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서울보다는 기온이 좀 낮은 것 같아 다행이지만 더워서 걷기가 만만치 않다.
이번 8차 여행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둘째 처제와 동서가 월-목요일 3박 4일로 여수 나들이를 왔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장소와 일정을 조정한 것 같다.
강서구 마곡동의 서울식물원을 찾아갔다. 중앙보훈역에서 9호선을 타고 마곡나루역에서 하차, 인천에서 온 처제와 동서를 만나 서울식물원으로 입장.
서울식물원은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한 이른바 ‘보타닉 공원’으로서 면적은 축구장 70개 크기라고 한다. 식물원은 열린 숲과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 등 4가지 공간으로 나뉘며, 그중 하이라이트는 식물문화센터와 야외 주제정원, 마곡문화관이 포함된 주제원이다.
봄꽃도 즐기고 산책도 하고 담소도 나누며 쉬엄쉬엄 식물원을 즐겼다. 장미꽃이 피기 시작한 열린 숲 공간. 아직은 어린 덩굴장미가 철그물망에 겨우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 몇년 뒤엔 덩굴이 우거져 멋진 장미터널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포토존엔 곰가족이 자리하고 있다. 미니어처로 구성된 숲속의 집들이 앙증맞다.
솔솔 부는 봄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상쾌한 봄날이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열린 숲을 지나 주제원으로 들어간다. (성인 입장료 5,000원. 경로우대 무료)
서울식물원은 2019년에 개원한 후 5년 정도 지났다. 식물들이 자리를 잡아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세력이 약해 보인다. 10년쯤 뒤엔 정말 멋진 모습의 식물원이 될 것 같다.
선인장을 비롯한 갖가지 열대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온실 안에는 꽃을 감상하며 잠시 머물 수 있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낭만 수국전(5월 4-19일) 덕분에 멋진 꽃사진도 하나 찍고-------
온실을 돌아보고 나와 주제원 숲속의 카카두 카페에서 음료수와 간식을 하며 휴식. 바람이 솔솔 부는 덕분인지 날벌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충분한 휴식 후 주제원을 통과해 호수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장미원에는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2-3주 뒤면 장미가 계절의 여왕 5월을 멋지게 장식할 것이다.
서울식물원 주위로 마곡 지식산업센터 건물들이 늘어서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많이 봤던 미류나무. 지금은 농촌에 가도 그 모습을 보기 어려운데, 이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쭉쭉 뻗어 올라가는 미류나무를 쳐다보며 호숫가에 앉아 어릴적 이야기를 나눠본다. 국민학교 시절 불렀던 '흰구름' 노래가 문뜩 떠오른다.
도심 한가운데 온천이 있는 것처럼 '온화한 곳'이란 뜻의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구도심을 돌아보게 된다. 트빌리시의 구도심은 5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으며, 고전주의와 소비에트 양식 등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중세풍의 느낌이 강하다.
제일 먼저 찾아간 국민들의 헌금으로 세워진 성삼위 사메바 대성당.
성삼위 사메바 대성당은 조지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1995년부터 건축을 시작해, 2004년에 완공되었다. 건축가 아킬 마인디아스빌리가 설계하였으며,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 기념과 조지아 독립 공화국 설립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되었단다. 정교회 성당 안에는 의자와 악기가 없고, 제대에 이콘이 있다. 정교회는 신자들이 모두 서서 예배를 드린단다.
성삼위 사메바 성당이 봄꽃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쿠라강 바위 절벽 위에 있어 구시가지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은 메테히 성당은 5세기 박탕 고르가살리 왕이 수도를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기며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요새에 지어진 교회다.
교회 옆 절벽에는 트빌리시를 건설한 박탕 고르가살리 왕의 동상이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가파른 바위 절벽 아래 쿠라강이 흐르고, 강 건너 솔로라키 언덕에는 나리칼라 요새가 있어 주변 경관이 참 아름답다.
솔로라키 언덕의 나리칼라 요새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승강장이 내려다 보인다. 우리는 언덕을 내려가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흑해를 끼고 유럽과 아시아 중간에 위치한 조지아는 끊임없이 강대국의 침략을 받았다. 4세기 중반에 페르시아가 세운 나리칼라 요새가 언덕 위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솔로라키 언덕에 오르니 트리빌리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기념품 가게 앞을 지나 조지아 어머니 상으로 향한다.
조지아 어머니상은 왼손에 포도주,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 다가오는 누군가에겐 와인을 내밀며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칼을 내밀어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지녔단다.
나리칼라성은 보수 중이어서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성 아래쪽에는 식물원이 자리하고 있다.
성을 돌아보고 내려와 트빌리시 구도심을 돌아보았다. 카페거리를 지나 시오니 성당으로 향한다.
꿈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계시를 받은 성녀 니노가 포도나무 십자가에 머리카락을 묶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시오니 성당. 2004년 성삼위 시메바 대성당이 완성되기 전까지 조지아 정교회 주성당이었다고 한다.
제대 왼쪽 철 구조물 안에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가 보관되어 있다.
시오니 성당을 방문하고 평화의 다리로 쿠라강을 넘어간다.
평화의 다리는 트리빌리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보행자 다리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미셀 드 루치와 프랑스 조명 디자이너 필리 마르티노드가 설계해서 2010년에 완공했다. 야간에 LED 240만개 램프가 펼치는 야경이 환상적이란다.
28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날 도심을 돌아다니는 것이 만만치 않다. 호텔로 돌아가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쿠라강으로 와 보트 투어를 했다. 보트를 타고 시원하게 강을 달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바지선 같은 큰 배를 타고 천천히 쿠라강을 돌아본다. 실망스럽지만 업자가 제공한 포도주 한잔에 마음을 삭혔다.
평화의 다리까지 왕복하며 트빌리시를 즐겼다.
배에서 내려 다시 구시가지 쪽으로 이동.
2010년에 조지아 인형극 연출가 가브리아제가 세운 시계탑에는 매시 정각에 천사가 나와 종을 친단다. 시계탑은 사실은 공연예술극장의 매표소인데 줄여서 가브리아제 시계탑이라 부른단다. 약간은 삐딱하게 서 있는 시계탑이 정형화 된 것만 보아온 우리에게는 좀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저물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다시 또 건너가는 평화의 다리에는 LED 등이 일부 들어오기 시작했다.
트빌리시에서의 마지막 만찬. 여가수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그동안의 여행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 하다.
오늘이 아내 생일날. 별안간 울려퍼지는 생일축하 노래에 당황하는 아내. 가이드가 준비해 준 깜짝쇼 덕분에 아내 생일 축하를 대신했다. 감사!!!!
4월 하순에 들었는데도 하얀 눈속에 파묻혀 있는 카즈베기 산맥에 자리하고 있는 구다우리에서 아침을 맞았다. 어제 저녁에 우박이 쏟아져 날씨 걱정을 했는데 창밖을 보니 언제 우박이 내렸냐는 듯이 쾌청하다. 오늘도 좋은 날씨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식사 전 하얀 눈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 아침 산책을 했다. 보이는 것만큼 기온이 차지 않아 상쾌했다.
아침식사 후 아슬아슬한 카즈베기 산맥의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구다우리에서 카즈베기로 가는 길은 러시아 국경으로 가는 군사도로로 조지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중요 도로라고 한다. 한밤중에도 컨테이너 차량과 같은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길이 험해 사고도 종종 난다고 한다.코카서스 산맥을 따라 가다보면 눈쌓인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조지아-러시아 우정 기념물(구다우리 전망대)을 만나게 된다.
카즈베기 산맥아래 펼쳐져 있는 멋진 아그라비 협곡 일명 악마의 협곡이 내려다 보이는 곳(해발 1,800m)에 자리한 기념물에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러시아-조지아 우정 기념물인데 1783년 체결된 게오르기에프스크 조약을 기념하고 두 나라간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물이란다. 조지아의 입장에서 보면 게오르기에프스크 조약은 동 조지아를 러시아의 보호령으로 한다는 굴욕적인 조약일텐데, 우정 기념물이 맞는 표현일 지 모르겠다.
기념물 중앙에는 조약이 체결된 1783년과 기념물을 세운 1983년이란 기록이 새겨져 있다.
기념물 오른쪽에는 러시아의 역사와 상징물을
왼쪽에는 조지아의 역사와 상징물을 그려 놓았다.
이곳은 카즈베기 산맥 '악마의 협곡'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구다우리에서 산길을 40분 정도 달려 카즈베기에 도착했다. 4륜 구동 차량에 분승해 카즈베기산을 올라 해발 2,170m에 위치한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방문하였다. 오늘이 주일이라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10여분 정도 미사에 참례했다. 우리와는 달리 사제가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은 미사드리는 것을 보는 것으로 예를 다 하는 것 같았다.
'삼위일체 교회'라고도 불리며 이 교회에는 전쟁이나 재난 시에 조지아의 귀중한 유물을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산 아래 스테판츠민다 마을이 조망된다.
카즈베기에서 3시간을 달려 므츠헤타로 향했다.
중간에 유황이 흘러내려 쌓인 곳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신비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므츠헤타에 도착해 4세기 초에 건립된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을 둘러보았다. 성당으로 오가는 길은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이 일요일임이 실감난다. 가이드가 조지아의 국민 간식인 추르치헬라를 하나씩 사 주었는데, 글쎄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므츠헤타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지아 정교회의 지도자가 거주하는 곳이다. 스베티츠호벨리는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입고 있던 옷을 보관 하고 있었다고 한다.
곳곳의 프레스코화가 훼손된 모습이 안타깝다.
오늘 주말을 맞아 어린이 민속공연단의 공연이 있었나 보다. 잔디밭에서 쉬고 있던 단원들이 우리를 위해 예정에 없던 즉석 공연을 펼친다. Thank you very much!!!
성당을 돌아나오는 길에 카페트와 같은 관광물품과 먹거리를 전시 판매하고 있다.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인 즈바리 수도원으로 Go!!! 즈바리 수도원은 므츠헤타(Mtskheta) 근처에 있는 6세기에 세워진 조지아 정교회 수도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름다운 므츠헤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산 정상에 있다.
성녀 니노의 성화
성의를 거머쥐고 땅에 묻힌 사도니아와 거기에서 자란 삼나무를 잘라 만든 기둥 왼쪽에 주교가 있고, 오른쪽에 포도나무 십자가를 들고 기도하는 성녀 니노가 있다. 그리고 맨 아래 양쪽에 무릎을 꿇은 이베리아의 왕 미리안 3세와 나나 왕비가 있다.
기원 후 1세기에 므츠헤타 출신 엘리아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예루살렘에 있었는데 골고다에서 로마 군인으로부터 예수님의 옷을 사서 조지아 고향으로 가져왔다. 고향에서 만난 여동생 시도니아가 예수님의 옷을 만지자마자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죽었다. 그런데 죽은 그녀의 손에서 예수님의 옷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예수님의 옷과 함께 묻었다. 시도니아가 예수님의 옷과 함께 묻힌 곳은 지금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안에 보존되어 있다. 그 후 그녀의 무덤에서 거대한 삼나무가 자랐다.
성녀 니노는 조지아에 첫 교회를 짓기 위해 삼나무를 베어 7개의 기둥을 마련하고 세우려 하였다. 그런데 7번째 기둥이 스스로 공중으로 떠올라 교회를 지을 수 없었다. 성녀 니노가 밤새도록 기도를 하자 기둥이 공중에서 땅으로 내려왔고 교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7번째 기둥에서 성수가 흘러나와 모든 질병을 고쳐주었다.
수도원에서내려다 보이는 양수리(?)
정면의 강이 코카서스 산맥에서부터 시작된 아라그비 강. 오른쪽이 튀르키에에서 발원하여 트빌리시를 통과한 므츠바리 강, 이곳에서 두 강이 만나 왼쪽으로 흘러 카스피해에 이른다고 한다.
서서히 12박 13일의 코카서스 3국 여행이 막바지를 향해 달린다.
세 나라를 돌아보며 거의 매일 수도원을 방문했던 것 같다. 일행 중 어느 분이 성지순례를 온 것 같다는 말씀이 이해가 된다. 코카서스의 자연환경과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인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의 종교 유적을 즐겼던 것 같다.
내일 하루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마지막 관광을 한다. 끝까지 즐겁고 재미있게 화이팅!!!!!
트빌리시 시내에서 아침을 맞았다. 아침식사 후 1:20을 달려 우플리스치케 동굴 마을로 향했다. 동굴마을을 보기 위해 암석으로 이루어진 언덕을 오른다. 다행히 바닥이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조심조심!
동굴 마을 아래로 므트크바리 강이 흐르는 넓은 지역이 굽어보인다. 이 강물은 트빌리시 쿠라강으로 흘러간단다.
우플리스치케는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 중 하나로, 암석도시(동굴마을)이다. 다양한 구조들과 암석 절단 기술들이 적용되어 있으며, 이교와 기독교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조합을 만나 볼 수 있다.
우플리스치케 고대 동굴도시는 BC 4세기에서 AD 4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종교, 정치, 문화 중심지였단다. AD 4세기 조지아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국교로 공인된 이후 태양신을 섬기던 이곳이 새로 이주한 기독교인들의 터전이 되었다. 645년 아랍의 침략을 받아 이슬람 점령 기간에는 이곳이 저항세력의 중요한 방어 요새였고, 11세기 초 지중해, 흑해와 카스피 해,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던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지역으로 한때 인구 2만 명의 거대한 도시였단다. 하지만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1920년 지진으로 동굴도시 중 그나마 남아 있던 부분도 많이 무너졌단다. 이곳에서 발견된 금, 은, 동으로 만들어진 장신구와 도자기 등은 트빌리시의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따온 글)
겨우 한두명이 들어갈 수 있는 지하 감옥. 탐방객들이 던진 동전이 반짝이고 있다.
12세기에 동굴도시 언덕 위에 석재와 벽돌로 지어진 정교회 바실리카
동굴마을을 돌아보고 나가는 두 가지 길. 하나는 올라오던 계단으로 내려가는 방법, 또 하나는 동굴마을 사람들이 강물을 길어오기 위해 비밀리에 사용하던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이다. 그 옛날 이곳에서는 암석을 뚫는 일은 살아가기 위해 필수 수단이었던 것 같다.
우플리스치케 동굴 마을 안내도와 박물관
동굴마을을 나와 30여분 차를 타고 조지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 고리로 이동.
쿠라 강 유역에 7세기 톤티오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있는 고리는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1917년 혁명 전에는 행정·상업 중심지였다.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1879년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1888~94년까지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단다.
고리 시청의 모습
고리에 세워진 스탈린 박물관은 스탈린 사망4년 후인1957년 고리 태생 스탈린에게 공식적으로 헌정한 박물관이란다.스탈린주의적인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스탈린이 입었던 의복,책상,의자,책 등 스탈린이 소장했던 물건들이 전시되고 있다.
스탈린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그가 타던 전용 열차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안의 스탈린 동상. 과거 소련 당시 곳곳에 있던 스탈린 동상은 이제는 몇 안 남았다고 한다.
스탈린 박물관이 있는 고리시에서 1:30을 달려 아나누리로 향했다.
아나누리로 가는 도중 진발리 호수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멋진 풍광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아나누리 성채는 두 개의 성과 하나의 교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건물 전체를 성벽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다. 네 귀퉁이에 망루가 솟아있어 동시에 요새의 역할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나누리 성채에서 내려다 보이는 진발리 호수는 소비에트 시절 아라그비강을 막아 댐을 만든 인공호수인데, 주변을 둘러싼 산과 고운 물빛이 어우러져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데, 호수의 물이 말라 기대를 저버렸다.
교회 정면의 화려하고 장엄한 부조. 포도나무 십자가와 그 양옆의 나무 아래의 천사, 그리고 십자가 아래의 마주 보고 있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진발리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종탑
아나누리에서 1:20을 달려 구다우리의 Best Western Hotel에 도착하였다.
가는 도중에 검은 물과 맑은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도 잠시 보았다.
구다우리로 향하는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이 아찔하게 스쳐간다. 낭떠러지 위 갈 지자의 도로를 지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오른 발에 힘이 주어진다. 위험할 때 브레이크를 잡던 습관 때문일까?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아침을 맞았다. 아침 식사 후 짐을 챙겨 국경으로 이동, 조지아로 넘어갔다.
국경을 넘기 전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코카서스 산맥의 잔설이 많은 여운을 남긴다.
땅 속에서 동을 채굴하고 제련하던 곳. 예전에 많은 양의 동이 이 지방에서 채굴되었단다. 지금은 채산성이 낮아 폐허로 변한 상태이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들어왔다. 쿠라강 유역에 자리잡은 트빌리시는 조지아의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다. 흙탕물 상태의 쿠라강은 우리 눈에는 결코 아름다운 강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 왈 색은 흐리지만 오염된 것은 아니란다.
쿠라강 건너 언덕 위에서 트빌리시를 세운 왓탕 고리가살리 왕의 기마상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찾아간 유대교 회당. 정교회와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조지아의 국기가 골목길을 장식하고 있다. 석류와 과일의 생즙을 파는 노점상이 지친 우리 일행들에게 인기 만점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어린 아이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입을 크게 벌리고 빼앗아 먹으려는 자여, 옆 가게에서 돈 주고 사 드시게나!!!
블로그를 정리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타마다 청동상은 건배를 주관하는 깐지를 들고 있는 동상이란다. 깐지는 짐승의 뿔로 만들어진 술잔으로 아래 부분이 뾰족하여 내려 놓을 수가 없어 받은 술잔은 한번에 마셔야 한단다.
자유시간 후 단체로 온천으로 Go!!!! 나는 온천을 다녀오면 다리 부분에 트라블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는 동안 주변을 돌라보았다. 언덕에서 바라본 온천장의 모습이 특이하다.
트빌리시 아바노투바니 유황 온천은 오랜 시간 동안 보존되온 타일과 사우나, 냉탕 및 온탕, 휴식공간 그리고 다양한 마사지까지 준비되어 있는 곳이란다. 시인 푸시킨은 '내 생에 트빌리시의 온천보다 더 황홀한 온천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이 온천을 사랑했다고 한다.
주변의 개인박물관을 3라리(약 1,500원)를 내고 들어가 보았다. 거구의 주인장이 안내하면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해 준다. 열심인 그에게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가끔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건물을 지으려고 땅파기를 하다가 우연히 유적을 발굴했다고 한다. 발굴한 유적들을 개인박물관에 진열해 놓았다.
노천 카페에 앉아 차 한잔 하는 여유도 누렸다. 저녁 식사 후 트빌리시 외곽에 있는 '조지아 연대기'를 찾았다.
조지아 출신 러시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주랍 체레텔리가 조국 땅에 사비로 세우고 있는 역사공원이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조지아 연대기'의 엄청난 규모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35m 높이의 16개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예수님의 일생 기독교의 역사가 기둥 상부에는 조지아의 왕과 여왕 영웅들이 새겨져 있다.
90세가 넘은 주랍 체레텔리는 현재도 조지아 연대기 완공을 위해 애쓰고 있단다.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입구에 있는 카페트를 말아놓은 듯한 형태의 조형물은 조지아 연대기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성녀 니노의 십자가를 형상화한 십자가상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포도나무에 묶은 십자가로 선교를 하였단다. 머리카락으로 묶은 포도나무 십자가는 조지아 정교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언덕 위의 '조지아 연대기'에서 바라보는 트빌리시 호수의 모습과 트빌리시의 야경은 멀리 찾아온 이들에 대한 보답(?)
'조지아 연대기'는 조지아의 역사와 문화, 조지아 정교회의 신앙심을 한 눈에 보고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넘어 온 날. 긴 시간 버스를 타고 먼 거리를 움직였다. '조지아 연대기'의 멋진 야경이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다.
코르비랍(지하 감옥이란 뜻) 수도원은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한 성 그레고리가 13년 동안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던 자리에 세워진 수도원이다.
성 그레고리가 수감되었던 지하감옥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수직 통로에 놓인 사다리를 이용해야 지하감옥으로 갈 수 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좁은 동굴의 감옥에서 13년을 갇혀있었다니, 신앙심이 있기에 오랜 세월을 견디어 냈을 것이다.
수도원 마당에 서면 아라랏산이 클로즈업되어 다가 오는 듯 하다. 채 10km도 안되는 거리의 저 산 너머는 튀르키예 땅이란다.
작은 문으로 수도원을 나와 언덕 위로 올라가 보았다. 언덕 아래 버스 주차장과 공동묘지가 보인다. 이곳이 풍수지리학상(?) 좋은 곳인가? 많은 이들의 무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언덕 위 십자가에 아르메니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언덕에 서니 수도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도원 성벽에 하츠카르가 세워져 있다.
아쉬운 마음에 아라랏산을 배경으로 한 컷! 가이드 왈 이곳에서 이런 멋진 날씨를 만나는 것은 운이 엄청 좋은 것이란다.
주차장 부근에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고 주변에 공동묘지가 늘어서 있다.
한 시간을 달려 가르니 신전에 다다랐다.
가르니 신전은 기원전 3세기에 요새로 건립되었으나 기원전 1세기에 로마에 지배를 받으면서, 아르메니아 왕 트리다테스 1세가 네로황제의 후원을 받아 태양신 미트라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건축되었다. 아르메니아가 로마 제국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단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본따 만들었다는데 내부는 단순하고 협소한 편이다.
신전 주변에 발굴되고 있는 유적들
신전 주변에 봄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다. 밑으로 아짜트 계곡 주상절리가 보인다.
신전 주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RV 차량을 타고 아짜트 계곡으로 갔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아짜트 계곡 주상절리 입구
주상절리는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내리면서 식게되는데 이때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균열이 생겨 형성된다. 용암은 표면부터 식을 때 균열이 육각형 모양으로 형성되고 점점 깊은 곳도 식어가면서 균열은 큰 기둥을 만들어낸다. 용암이 식는 속도와 방향에 따라 주상절리의 모양과 크기가 결정된다고 한다.
주상절리의 돌기둥이 피아노의 현이 되어 멋진 교향곡을 연주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언덕 위로 가르니 신전이 보인다.
예레반으로 돌아와 예레반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캐스케이드를 둘러보았다.
아르메니아 도시 계획자이자 러시아 출신 건축가인 알렉산드르 타마니안이 현대 예술과 건축을 결합한 공간으로 총 57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예술 작품들과 조각들로 장식되어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예술적 시각을 경험하게 한다. 예술 작품들은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의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 예술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체감할 수 있다.
캐스케이드 내부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편히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으며, 곳곳에 여러 작가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맨 위층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에레반의 경관과 아르메니아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예레반 시내 모습 너머로 아라랏산의 만년설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다시 공원으로 내려오니 갖가지 조각품들이 우리를 반긴다. 콜롬비아 페르난도 보테르 작가의 작품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사물의 입체감을 살린 특이한 예술성이 돋보인다.
'파란 새'도 페르난도 보테르 작가의 작품일 것 같은데, 글쎄?
우리나라 지영호 작가의 작품 '사자'. 폐타이어를 활용해 사자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잘 표현했다.
예레반의 관광 기점인 '공화국 광장'은 아르메니아 건축가 알렉산드르 타마니안이 1924년에 설계하고 건축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국립 미술관, 역사박물관, 국토관리부, 중앙청사, 외무성, 중앙우체국, 메리어트 호텔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아르메니아의 붉은색 응회암으로 건축되었다. 이곳은 소련 지배 당시에 레닌 광장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레닌 동상도 철거되고 이름도 공화국 광장으로 바뀌었다.
공화국 광장 주변의 베르니사지 벼룩시장을 돌아보고 기념품 몇 가지를 샀다.
벼룩시장 근처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르메니아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2박 3일 짧은 기간에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주위를 돌아보았다. 더 많은 곳을 보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 보여주는 것만을 열심히 즐겨야 하는 패키지 여행의 한계점이 아닐까?